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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의 일식기록 중국사서 인용 안 했다|김용운 교수(한양대)일본「반도씨 설」을 반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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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삼국사기의 일식에 관한 기록은 중국의 사서를 무비판적으로 전사한 것이라고 주장, 그동안 통설로 되어 온 일본 반도충부(작고·동양천문학사)박사의 설은 편견에 치우친 잘못된 것이라는 견해가 김용운 교수(한양대·수학사)에 의해 제기돼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 교수는 73년부터 삼국사기, 중국의 고대사서(이십오사), 반도의 논문 등을 검도한 끝에 김부식이 절대로 중국 것을 옮긴 것이 아님을 밝혔다고 말하고 반도 설은 이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도 씨는 27년 ⓛ삼국사기에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일식이 기록돼 있고 ②연대의 차이가 있으며 ③삼국의 일식기록의 대부분은 중국사 등에도 있는 것으로 다만 없는 것은 잘못 옮겨 적은 것이라고 주장, 삼국사기의 독창성을 부인한 바 있는데 지금까지 통설로 되어 있다.
김 교수는 반도 설에 대한 반증으로써
▲연대의 착오는 없으며 오히려 반도 씨가 원성왕 3년(789년)을 787년으로 하는 등 착오를 범했고.
▲신라본기(남해 왕 13년)의 일식기록이 중국기록을 옮겼다면 중국일식기록 뒤에 20여 일간 혜성이 있었다는 기록도 빠뜨리지 않았을 것이며.
▲진서천문지에는 76년의 일식기록이 있으나 이를 인용했다는 신라본기에는 1건도 없는 점.
▲애장왕 2년(801년)의『일식 날을 당해도 일식을 하지 않았으나 중국에서는 보였다』라고 기록한 점.
▲고구려와 신라의 일식이 일치하는 것이 1번, 고구려와 백제의 일식이 일치하는 것이 1번씩 뿐으로 만약 전사했다면 일치하는 것이 더 많았을 것이라는 점.
▲중국기록에『사관불견요동이문』즉 고구려에서는 봤는데 중국에서는 들었다는 것은 고구려도 독자적인 계산, 관측이 가능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또 김 교수는 그 간의 연구결과로
▲신라에는 기원전 54년 5월19일의 첫 일식에서부터 서기 256년까지(제1기)에 19번, 제2기 (∼786년)에는 없었고 제3기(∼911년)에는 10번의 일식기록이 있었는데 그 기록은 낙랑의 흥망과 관계가 깊었으며 제2기에 일식기록이 없는 것은 낙랑이 이미 힘을 잃었기 때문이며 제3기에서는 첨성대, 천문도(692년), 물시계(718년), 천문제도확립(749년)등 준비과정을 거친 이후부터 일식기록을 볼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11번의 기록이 있는데 신라보다는 기록이 정확했으며 백제는 26번으로 후기로 갈수록 기록이 정확했다.
▲당시 중국인은 역=?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 일식이 있으면 꼭 역사적인 사실과 결부시켜 기록하고 있는데 제1기의 19회 중 14회에서『일유식』(일식이 있었다)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일식기록이 낙랑 등 외부에서 얻은 정보일 것이며 3기에서는 일관이 직접 기록했을 것이다.
▲일식을 황사현상, 별의 이동, 지진 등 천지이변과 동일시했다.
▲6세기 백제에서는 중국과 다른 달력 있었으며 따라서 강한 독립의식을 엿볼 수 있다는 등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또 신라통일기로 잡고 있는 한국수학사의 기점을 고구려 초기까지 5백년정도 앞당겨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 교수는 이 같은 사실을 12일 한국이학사학 회(서울 성신여사대)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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