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예선 재물이 된 「키신저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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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키신저」가 주요 해외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각료와 심지어는 대통령까지도 「앤드루즈」공군기지까지 출영한다. 그러나 「키신저」는 5월7일 「아프리카」에서 쓸쓸한 귀국을 했다. 그를 마중 나온 사람들은 그가 「야생 동물들」이라고 농담 삼아 부르는 기자들과 국무성의 심복들뿐이었다. 「키신저」가 증언하는 의회의 회의실은 언제나 만원이다. 그러나 한달전 그가 상원외교위에 나타났을 때 시간이 벌써 10분이 지났는데도 그를 기다리는 의원은 한 사람도 없었다. 급한 전화 연락을 받고 겨우 2명의 상원의원이 나와서 「레바논」내전에 관한 「키신저」의 증언을 들었다.
「베트남」협상과 「데탕트」의 영웅인 그는 대통령 예비 선거의 북새통 속에서 이렇게 「천덕꾸러기」대접을 받고 있다. 「키신저」가 17일 아침 NBC방송의 「바버러·월터즈」와의 대담에서 「포드」대통령의 재선에 관계없이 국무장관 자리에 남아있지 않겠다고 자진해서 입장을 밝힌 것도 「포드」가 자신을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포드」선거 참모들은 「텍사스」예선에서의 패배를 「키신저」의 「아프리카」여행 탓으로 돌린다. 「텍사스」예선 직전에 「키신저」는「아프리카」서서 「로디지아」와 남아연방의 흑인 다수 통치를 제창하여 「텍사스」의 보수적인 공화당 유권자들을 놀라게 했다는 판단이다.
「리건」은 「키신저」가 「아프리카」에서 내란을 선동한다고 주장했고 「파나마」운하를 포기하려 든다고 억지를 썼다. 그렇게 해서 그는 「텍사스」와 「인디애나」 등지에서「포드」에게 이겼다. 「리건」은 「파나마」운하는 「알래스카」와 「루이지애너」 같이 미국이 매입한, 미국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휴스턴」을 드나드는 선박들은 「파나마」운하와 이해관계를 갖기 때문에 「리건」의 그런 교만한 식민지주의적인 선동이 통했다.
그 결과 「키신저」는 간단히 예선에서 패배한 「포드」진영의 제물이 되고 있다.
「뉴요크·타임스」의 「레슬리·겔브」는 「키신저」가 처한 사면초가를 이렇게 설명한다. 『보수주의자들은 「키신저」를 대통령과 국민들을 파멸로 이끄는 「라스푸틴」이라고 표현한다(「라스푸틴」은 제정 「러시아」말기 궁중을 휘둘렀던 승려). 반 유대주의자들은 그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이름을 날리려고 하는 「샤일럭」이라고 부른다.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키신저」를 정책 결정을 의회와 분담하기를 거부하는 「조지」3세라고 부른다.』-「키신저」를 두둔하는 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포드」가 지난주 미국 유대인 위원회(AJC)에서 연설하면서 작년 9월의 「시나이」협정을 「평화의 이정표」라고 찬양하고서도 「키신저」의 이름을 들지 않은 사실은 「키신저」에게는 가혹할 만큼 암시적이다.
그러나 「포드」의 입장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갤럽」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간에 「키신저」의 인기는 48%다. 전문가들은 「키신저」가 예비 선거 기간에는 「포드」에게 부담스러워도 11월의 본선에서는 「키신저」가 없으면 「포드」는 표를 잃는다고 본다. 그러니까 「포드」대통령이 「키신저」장관을 지금 해임할 처지는 아니다.
따라서「포드」대통령에게 주어진 선택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키신저」를 그 자리에 계속 앉혀 놓고 「키신저」외교를 「동결」시켜 버리는 일이다. 「포드」대통령이 소련의 짜증을 예상하면서도 미소간의 평화적인 지하 핵실험 제한 조약의 서명을 「미시건」주 예선 이후로 미루고 있는 것이 그런 예다.
「키신저」가 ABC 방송 해설가 「바버러·월터즈」에게 내년 1월 이전에는 중공을 방문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포드」의 그런 속셈을 알아차린 발언이다. 「키신저」는 문자 그대로 「밀려나기 작전」의 국무장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예선과 11월 선거 이전에는 자기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위기가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워싱턴=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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