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위기 좌시만 할 것인가|박용구<음악 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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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주체성이란 쉽게 말해서 내 것을 지키는 마음가짐이다.
예술의 경우 무르익은 것, 다듬어진 것, 숙련된 것의 축적인 전통이 위기에 놓여 있을 때, 그것은 또한 주체성의 위기로 근심스러운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어려운 여건에도>
4월로 25주년을 맞는 국립국악원은 우리 나라 전통음악의 종가다.
국립의 국악원은 또 25주년이지만 국악원이 계승해 온 아악은 천년동안 축적된 음악 문학를 지켜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5주년을 맞은 국악원은 지금 국립극장 안에서 곁방살이를 하고있다.
기껏 반세기의 축적도 안되는 「오페라」 「발레」 「심퍼니」등과 도매금으로 넘어가서 혼거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국악원에 소속한 국악사의 숫자가 겨우 13명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문화정책에서 바람직한 주체성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극단적으로 말해서 「오페라」 「발레」 「심퍼니」등은 우리가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본고장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국악원의 음악은 싫건 좋건 지구 위에 본고장은 우리 뿐이요,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소멸해 버릴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세계의 추세」도 봐야하고 「문화국가의 체면」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주체성의 구심점은 어디에 있는가는 자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악원은 25주년을 기념해서 나흘 밤에 걸친. 알찬 연주회를 마련했다.
이틀 밤은 『수제천』 『보태평』을 비롯한 전통음악의 명곡들, 나머지 이틀 밤은 창작발표회.

<주술적 설득력에>
줄기차게 고수되어야하는 전통과 새로움이 모색되어야 하는 문화를 함께 다룬 현명한 「프로그래밍」이라고 할 수 있다.
금속질의 음색과 피혁질의 음색을 의식적으로 대치시키면서 주술적 설득력을 성취한 젊은 작곡가 이건용의 『건곤리감』과, 앞뒤 부분을 원초적인 음색의 훈과 공(GONG)으로 주역을 맡게 하고 중간부분에서 재래적인 한스러움이 노출된 가락을 대금과 가야금으로 연주시켜 강렬한 음악적 주장을 표출한 강석희의 『명』은 이번 발표회의 값있는 성과가 된다.

<세계의 추세에만>
이 달의 화제는 「무소르그스키」의 작품만으로 엮은 백건우의 「피아노」 연주회. 이런저런 곡절이 풍부했던 인기 여배우와의 결혼으로 사회적 관심이 모여진 그의 연주회가 「피아노」를 듣기보다 연주자를 보러 가는 청중으로 붐볐다면 「무소르그스키」만을 택한 백건우의 순수한 의욕은 비극적인 것이 되지 않은가. 농사꾼의 손과 눈으로 된 「고호」의 그림이 오늘에 와서 백만금의 귀중품으로 보여지는 비극성을 나는 문득 생각한다.
「피아노」 연주자로는 그밖에 일시 귀국한 한동일과 이청이 있었고 성악가로는 「소프라노」 이규도와 김성애, 「테너」 김호성이 있어 충실한 연주회가 잦았던 4월이 되었다.
「심퍼니」로는 시향과 국향이 「말러」경연을 벌여 『세계의 추세』에 열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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