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엄격한 처녀감정 거쳐 결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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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동포들이 운수용역과 주택 건설로 활약하고있는 「페르샤」만의 항구도시 「반다르압바스」를 찾고자 새벽녘에 「버스」로 「시바르」를 떠났다.
앙상한 나무에는 찬바람이 스치고 아직 눈이 쌓여 있다. 엊그제 「바레인」섬에서 여객기로 올 때에 내려다보이던 「마하루」호가 나타났는데 이 호수는 꽤 넓었다. 그 옛날 이 물을 이용하여 일찍부터 농경문화를 이룩하여 찬란하고 찬란한 「페르샤」제국의 배경이 된 만큼 큰 구실을 한 이른바 『문화의 호수』다.
그러나 아직도 개척되지 않고 있는 것이 아쉬웠다. 우리 나라가 지금은 고작 이 나라에 와서 운수용역과 주택건설을 하지만 좀더 확대하여 이 「마하루」호수에 기계를 도입하여 개척해 줄 수는 없을까. 이 호수를 끼고있는 「자그로스」퇴적산지가 펼쳐지는가 하더니 양을 치는 유목민들이며 돌로 지은 이들의 예스러운 움막집이 보였다.
이 유목민들은 내가 탄 「버스」를 보자 다정스럽게도 손을 흔들어주는데 이것은 매우 흐뭇한 광경이었다. 이곳은 사력 사막지대로서 예로부터 통로로는 지반이 굳어서 편리했다.
목적지로 가는데는 세 줄기의 길이 나 있는데 지금 내가 탄 「버스」가 지나는 길 한쪽에는 그 옛날의 꼬불꼬불한 자연도로가 있으며 또 한쪽에는 지금 중기를 이용하여 폭이 넓고 직선인 「하이웨이」를 만들고 있는데 이것은 이 나라 석유로 발전하는 영광의 길이다.
지난 날 「페르샤」제국의 판도를 넓힐 때 「다리우스」대왕이며 「크세르·크세스」대왕들이 이끄는 군대가 위풍당당하게 행진하던 것도 이 부근일 것이다.
얼마 뒤 「오린지」밭이 보이는가 하더니 자그마한 마을이 보였다. 초라한 집들뿐이지만 앞으론 도시로서 발전하려는지 도시계획은 매우 크게 하여 포장은 안되었으나 폭은 넓게 잡고 있었다. 그리고 길가에는 작은 가로수를 규격 있게 심었는데 모두가 「오린지」나무였다.
유실수를 심는 것이 매우 공리적으로 보였다.
아침은 춥지만 낮은 햇살이 따가웠다. 이 지대에서는 양들을 많이 기르는가 하면 「오린지」를 많이 가꾸고 있어 사막지대지만 매우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이 나라는 「이슬람」교를 믿고 있어서 공통된 「코란」의 계율을 따르지만 이런 미개한 곳에서는 특히 결혼에 즈음한 처녀감정이 매우 엄격하다는 것이다. 처녀는 두 번 이상의 「멘스」를 증명해 보이지 않고는 시집을 갈 수 없게 되어 있는 것도 그 하나지만 처녀성을 너무나도 중요시하는 나머지 중매인이 신부의 순결을 손수 감정해 보이지 않으면 처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것 같았다. 처녀성을 받드는 것은 세계 여러 나라의 공통된 관습이지만 「이란」에서 베풀어지는 이런 방법은 지나치게 비도덕적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 마을 한사람에게 『순결을 사랑하는 것은 남녀가 마찬가지 일테니 신랑의 동정을 검사하지는 않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오직 여자에게만 이런 순결검사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만저만한 남존여비사상이 아닌 것 같아서 여자에게 너무 하다고 하자 그는 모두가 「알라」신(이슬람교의 유일의 절대자)의 뜻이라고 했다. 이건 사고방식에서도 이들이 얼마나 종교적인 숙명론으로 모든 사물을 관찰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이 마을에는 벽이 두터운 2층집이 많이 보였는데 매우 평화롭게 보였다.
그러나 길이 있는 언덕에 초소들이 많이 보이는 것은 어딘가 치안의 불안정을 느끼게 한다. 현 정권은 경찰을 많이 갖고있다는데 이것이 다 그전에 있었던 「쿠데타」같은 정변을 막기 위한 방법이라고 볼 때 그냥 보기엔 시골이 평화롭게 보여도 불안한 요소가 깃 들어 있는 듯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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