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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앞장선 「국어순화운동」|서울 덕수상고의 이색 캠페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나는 자랑스런「우리말 지겨 쓰기의」 회원이 되겠습니다』. 서울 덕수상업고교(교장 성악용)신입생들은 입학식에서 전국의 어느 학교에서도 볼수 없는 색다른 선서를 한다. 기성세대의 외면으로 외래어가 판을 치는 판국에도 이같은 언어공해에 맞서 조용히 국어순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 학교 학생들은 73년 이후 올해까지 4번 있은 입학식에서 후배신입생들에게 꼭꼭 이 같은 선서를 하게 하고 있다.
이학교가 72년3월「우리말 지켜 쓰기 회」를 조직한지 5년째 학생들이 벌여온 국어순화운동은 많은 실적과 함께 활동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 학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우리말 지켜 쓰기 회」를 특활반으로 편성, 이 특활반을 중심으로 국어순화운동을 펴고 있다. 특활반의 학생은 현재 60여명, 매주 수요일의 특활시간이면 그동안의 실적과 자료를 분석하고 새로운 계획을 짠다.
이곳에서 결정된 일은 모두 학도호국단 운영회에 넘어가고 이곳에서 다시 토의된 뒤 결정된일은 7명의 지도교사가 심의, 각반 자치회로 넘어가 「다짐의」를 갖고 학생들이 실천에 옮긴다. 학생들은 방과후나 토요일 하오·공휴일등에 모두 호주머니에 「바른말쓰기자료」를 넣고 거리로 나선다. 「버스」 정류장· 교회· 상가·길거리등 어디서나 외래어를 쓰는 사람에게 우리말을 쓰도록 계몽하고 틀린 간판·틀린 게시문은 그 자리서 바로 잡도록 권유한다. 그래서 바로 잡아줘 고맙다는 편지만도 한달에 1백여장이 넘게 오고 있다. 모 학교안에서는 외래어나 은어·속어 등을 쓰지 못하게 서로 감시를 한다.
「군밤 먹이기」등의 내기도 이학교서만 있는일. 함부로 외래어를 쓰는 친구에게 군밤을 멱이고 그 자리서 바로 고쳐준단다. 이 학교가 처음 국어순화운동을 펴게된 것은 학교주변이 상가·시장 등으로 혼잡하고 번잡한 곳에 있어 언제나 오염된 언어공해 속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지금은 어느 학생도 그 오염에 시달리기는커녕 보람을 갖고 학교 안팎의 언어공해를 막는 일꾼이 됐다고 장담한다.
학생들이 조사, 이 학교가 발간한 「우리말 지켜 닦아 쓰기의 길」에 따르면 학생들의 결의에 찬 활동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그 「마담」 「헤어· 스타일」이 고상「틱」한데』『「미스·리」,이 「박스」에는「케이크」를 담고 저「그린」색의 「백」에는 「카메라」를 넣어.』
그리고『좋은 「아이디어」로 멋진 「레크리에이션」의「스케즐」을 짜 오늘의「하이킹·무드」가 「스무드」하도록 해』 『그는 항상 나의 「라이벌」 이었지. 서로「프라이드」를 갖고 「이니셔티브」를 쥐려고 싸웠지』등 남용되고 있는 외래어는 끝이 없다.
또 주체성 없는 이같은 외래어 외에 국민 총화를 해치는 말로 「식순이」「공순이」 「공돌이」 등, 무절제한 사투리의 남용, 국민정서를 해치는 「쐐주」 「곤조통」 「피봤다」「해골통」 「작살낸다」 등의 말도 우리말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것.
지도교사 신계식씨(42)는『최소한 이 학교는 우리말을 아끼고 곱게 쓸줄 아는 분위기가 돼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열의가 대단하기 때문에 이 학교에 처음 부임해온 교사들은 봉변을 당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잘못 외래어를 썼다간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선생님 말을 바로잡아준단다.
「우리말 지켜 쓰기 회」회장 윤명기군(18·3학년)은 『국어순화운동은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한 일이다. 무엇보다 일반 국민의 협조가 아쉽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한겨례의 말이란 정적인 사물이나 관념을 나타내는 의사소통의 수단일뿐 아니라 한겨레의 「얼」이 담긴 것이기 때문에 제 나라말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얼」이 빠진 사람이나 다를바 없다고 꼬집었다. <남상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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