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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을 상실한 소련경제의 병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소련경제의 병리가 차차 심화되고 있다. 거대한 계획경제체제인 소년은 자본주의경제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대로 여러 병폐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창의성과 생기의 상실이다.
급속한 경제발전을 위해 소련은 과거 몇 년간 수10억 「달러」를 쓰며 서방기술을 대량 도입했지만 기대한 것만큼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소련경제는 전반적으로 서방선진국보다 뒤떨어져 있으며 생활수준은 오히려 동구보다도 낮다.
소비재는 물론 주택 등은 비교가 안될 만큼 열악하다. 서방기술을 도입해도 경제의 발전이나 생활수준의 향상에 직결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서방기술이 소련의 토양에 정착되지 못함을 뜻한다. 근대기술은 제법·수순·경험지식의 복잡한 집적이어서 그에 적합한 환경 중에서만 계속 확대·발전한다. 소련의 지도층은 서방의 기술은 도입해도 서구의 사상이나 사회제도는 해로운 것이라 하여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서방기술이 소련에서 충분히 성과를 못 내고 있는 것이다. 소련은 서방기계는 수입해도 그 기계를 효율적으로 돌리는 경영조직이나 기술자는 받아들이기를 꺼린다. 소련은 자체의 기술 수준이 높지만 그것이 실천화되기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 아주 안 되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알루미늄」의 건식제조방법은 소련과학자가 이미 1950년에 개발했지만 소련의 어느 공장도 이를 실용화하지 않았다. 이 공법은 「프랑스」의 「페시니·알루미늄」회사가 지난 15년간 성공적으로 사용해온 방식이다. 신기술의 실용화가 소련에서 어려운 것은 소련경제의 근본적인 체제에 원인이 있다. 중앙집권적인 소련경제는 경제성이 무시되는 거대한 군사력을 유지·강화하고 항공우주사업들을 하는데는 효과적이지만 모든 사람의 창의성과 의욕을 고취하는데 부적합한 것이다. 소련경제를 계획하고 집행하는 것은 국가계획위원회다. 국가계획위원회 밑에 여러 단계의 위원회나 기관이 있어 서방에선 시장경제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생산량 등을 정한다.
이때의 계획의 기초가 되는 것은 가격이 아니라 수량이다. 물론 생산계획은 원활한 경제발전을 위한 청사진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코스트」가 무시되고 유연성이 없다는 큰 부작용이 따른다. 만약 꼭대기에서 사소한 판단착오를 하면 엄청난 자원낭비가 온다.
소련이 서독으로부터 기술을 들여다가, 「모스크바」교외에 비료부대제조공장을 건설한 적이 있다. 공장관리자는 비료부대의 생산목표를 할당받았으나 원료가 모자랐다. 생산목표를 안 채울 수 없어 적은 원료로 부대를 만들다가 보니 결국 생산수량은 달성했으나 막상 비료를 담아보니 부대가 모두 터져 아까운 비료를 모두 버렸다는 사례가 있다. 이런 예는 소련경제의 곳곳에서 일어난다. 또 현실을 잘 모르는 탁상계획이 실제 집행에선 많은 무리를 낳고 이는 경제의 능률성을 저하시킨다.
새로운 제품이나 새 공정을 만들려면 처음엔 비용이 많이 드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시장경제에선 처음의 손해를 장기적인 이익으로 「커버」한다는 생각아래 대담한 공정전환 등을 하지만 소련에선 계획목표의 달성이 우선이기 때문에 당장 계획에 차질을 주는 일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려 한다. 자연 무사안일이 만연된다. 능동적으로 일을 만들어 추진하려는 의욕이나 창의성이 죽을 수밖에 없다. 또 소련지도층은 경제의 분권화, 즉 권한의 하부위임이나 시장 및 지방관리자의 권한확대를 무척 꺼린다. 정치권력의 분권화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또 경제효율보다 정치를 우선 시키기 때문에 경제성이 흔히 무시된다. 이런 모든 것들이 소련경제의 장해요인이 되고있는 것이다. <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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