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속삭이는 동물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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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봄은 사랑의 계절-. 화사한 벚꽃이 활짝핀 창경원에는 연인들의 발길이 부쩍늘고 있다. 이들은 5색등이 반짝이는 춘당지 부근에서 밤이 깊도록 밀어를 속삭이고 있다.
이 같은 인간 가족들의 열애에 뒤질세라 일부 창경원 동물가족들도 봄을 맞아 사랑에 빠져들고있다.
목하 열애중인 동물가족은 올봄 창경원에 데릴사위로 들어온 기린·「말레이지아」 곰· 호랑이-.
이들은 맞선을 본지 아직 1개월도 되지 않았으나 이미 친숙해져 사랑의 몸짓을 주고 받고있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동물은 지난달 27일 일본에서 들여온 2년생 총각기린.
이 총각기린은 창경원에 들어올 때 동갑내 기린처녀를 동반하고 왔으나 이곳에 온 후 본래 창경원에 있었던 또 다른 기린처녀에게 한눈에 반해 버린 것.
지금까지 창경원 기린사를 홀로 지켜왔던 암놈은 키가 4·8m로 성숙한 몸매를 자랑하는 어엿한 숙녀.
나이는 올해 4살로 총각기린보다 2살이나 연상이다.
이 기린 처녀·총각은 맞선을 보던 지난 말 28일 울타리 너머로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상대방을몰래 훔쳐보기만 하는 등 첫 대면을 싱겁게 보내더니 다음날부터 곧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날이 밝자 경계선 울타리로 나가 긴 목을 좌우로 흔들며 인사(?)를 나누었다.
숙녀기린은 이때 현해탄을 건너오다 배 안에서 다친 총각기린 왼쪽 앞다리 상처를 혀로 핥아주며 쾌유를 빌었다.
이같이 시작된 이들의 교제는 곧 뜨거운 사이로 변했다.
한낮 운동장에서도 경계선 울타리에서 서로 떨어질 줄 모른다.
때로는 얼굴을 비비고 뽀뽀를 하거나 앞발로 상대방 앞발, 정갱이를 비벼대며 장난까지 하고있다.
또는 먹이를 물어다 나누어 먹기도 한다.
이 같은 정경에 노인 입장객들은 얼굴을 붉히며 돌아서기 일쑤.
기린과 함께 창경원에 들어온 「말레이지아」산 곰도 역시 열애 중-.
이제 3살로 청년기에 접어든 수콤은 동갑내 암놈과 곧 친숙해졌다.
이들은 철책사이로 앞발을 디밀어 불을 쓰다듬는 것이 흡사 사람과 같다.
또 수놈이 먼저 껑충거리며 뛰기 시작하면 암놈도 뛰어 입장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지난 1일 창경원에 들어온 광주출생 「엥골」산 호랑이는 아직 나이가 어린 탓인지 옆방의 꼬마숙녀 사자새끼틀 거들떠보지 않은 채 같이 온 누이동생과 나란히 붙어 다니고 있다.
창경원당국은 이 같은 기린·곰의 열애로 합사가 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맞선 기간을 줄여 빠른 시일에 혼례식을 올려주기로 했다.
한편 창경원에는 지난 일요일(11일) 지난해보다 3만여명이 많은 8만5천여명이 입장한 것을 비롯, 요즘 하루 평균 3만∼3만5천명이 찾아들어 활짝 피기 시작한 벚꽃을 즐기고 있다.
창경원당국은 20일 전후가 벚꽃의 「피크」를 이를 것으로 예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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