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도 통금도 없는 「쿠테타」 아르헨티나|허준 통신원 정변의「붸노스아이레스」를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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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55년 고「페론」을 축출한 「쿠데타」이후 네 번째, 그의 부인 「이사벨」정권마저 몰아낸 이번 「쿠데타」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겐 전혀 놀라울 것도 없는 것으로 「페론」주의 장례를 치른 것이라는 반응이다.
그것은 일찍부터 소문이 나돈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랫동안의 혼란과 무질서에서 벗어나 새질서와 변화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붸노스아이레스·헤럴드」지는 24일 사설에서 『「이사벨」 정권은 지난 「크리스머스」때 「비델라」 장군이 처방을 써 주었을 때 이미 죽었다. 이제 모든 것은 명백해졌고 남은 것은 시체를 치우는 것뿐이다. 역설적으로 이 일이 군부에 맡겨졌고 「쿠데타」는 불가피했다』고 썼다.
또 최근 「이사벨」의 하야를 주장하는 사설을 냈던 「페론」주의계의 「라·마요리아」까지 『어차피 올 것이 왔다. 군부에 대한 증오심은 없다. 모두가 협조해서 혼란과 위기를 극복하자』고 했다.
언론인 「안토니오·로드리게스·빌라」씨는 『「쿠데타」는 우리가 선택했기 때문이라기보다도 이 나라가 더 이상 갈곳이 없는 단계에 이르러 더 이상 지속이 불가능했기 때문에「페론」주의자들마저 이를 인정할 정도로 정권 인수가 완전히 정당화된 최초의 정변이었다』고 말했다.
「쿠데타」후 정권이 군에 장악되었으나 계엄령이 펴진 것도 아니고 더구나 통행금지가 실시된 것도 아니다.
「쿠데타」 당일만 하더라도 관공서를 군이 접수하고 외국 공관과 공항을 지키는 이외에는 「쿠데타」의 흔적을 볼 수가 없었다.
공항과 외국 공관 경비는 지탄을 받는 전 정권의 요인이나 노조 간부들이 국외로 탈출하거나 망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도 경비 중의 한 병사는 찾아온 애인과 사랑을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기관단총을 든 군인이나 지나가는 시민들은 서로 미소를 교환하고 상가도 전처럼 별일 없었다는 듯 문을 열었다. 밤이 되자 극장·「카바레」·식당·술집은 여전히 활기를 띠었다.
정권교체도 아주 조용하게 진행됐다. 당초 군부는 24일 새벽 대통령 관저 「올리코스」에 서 「이사벨」대통령을 깨워 데려가기로 했었다. 그러나 「이사벨」은 23일 자정이 넘도록「카사·로사다」에서 각료 몇 명과 노조 간부들과 「쿠데타」대책을 협의했다. 밤이 늦어 누군가 「헬리콥터」로 빨리 가는 것이 좋다고 해서 「헬리콥터」를 탄 것이 체포된 시간이었다.
부근 군용 비행장에 내리자 기다리던 3명의 장군은 『부인, 당신은 체포됐소』라고 말하면서 「이사벨」을 연행해 갔다.
「쿠데타」의 원인은 말할 필요도 없이 경제 파탄과 「이사벨」정권의 체질 때문.
해외 지불을 중단해야 될 정도로 바닥이 난 국가 재정과 연4백%나 되는 「인플레」로 인한 경제 파탄으로 작년도 집행 예산의 50%가 적자예산이고 이중의 90%는 통화 발행으로 메워졌다.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페로니즘」의 노선 때문에 지지 기반인 노조의 지원을 얻기 위해 영합하다가 국고를 탕진하고 이를 기화로 공금을 유용, 착복했다.
돈이 모자라 외국 기업을 「아르헨티나」화하고 과도한 수출세를 부과했다. 이 때문에 외자는 차차 끊어지고 수출은 더욱 부진했다.
거기다 고「페론」의 셋째 부인이라는 것 이외엔 아무 것도 없는 「이사벨」은 측근에 매달리는 수밖에 길이 없었다.
이틈에 「레가」 「라스티리」「곤잘레스」 등이 적극적으로 정책을 주물러 사리사욕을 채웠다. 또 존립 기반인 노조는 주요 정책 결정에 깊이 관여, 노조가 지지하면 위기가 해소되고 반대하면 문제 해결의 길이 없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노조의 막강한 권력 행사와 횡포는 「쿠데타」를 전후하여 수명의 노조 간부가 자가용 또는 노조 비행기로 「우루과이」 등 국외로 탈출한 것과 「쿠데타」 후 「우루과이」의 외환 보유고가 갑자기 늘어난 사실이 증명한다. 한 노조 간부는 「칠레」쪽으로 도망가다 잡혔는데 1억「페소」의 돈이 나왔다는 것.
그리고 「쿠데타」후 복지성과 노조 건물에서 군사전문가도 모르는 각종 신무기가 나왔고 노조 창고에서는 고문용 도구가 발견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군부가 기다린 것은 「이사벨」정권이 내부 붕괴로 군부가 개입했다는 비난 없이 「페로니즘」이 저절로 무너지기를 바란 때문. 「이사벨」이 내놓지 않는 것도 위기 해결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페로니즘」의 참사만은 피해 보자는 속셈 때문. 「쿠데타」후 정규 방송을 중단, 군사혁명위원회의 포고만을 발표하던 TV·「라디오」는 현재 동구를 순방 중인 대표축구 「팀」의 대전 실황을 우주중계로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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