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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내각 백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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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규하 국무총리는 27일로 취임 1백일을 맞았다.
김종필「정치내각」에 뒤이어「실무내각」「행정내각」으로 출범한 최 내각은「내실」과「안정」위주의 행정「스타일」을 정착시켜가고 있다.
중앙부처에 대한 대통령연두순시를 끝내 올해 내각의 시정구도도 일단은 그려놓았으며「서리」꼬리도 떼어 내어 본격 활동 기를 맞게됐다.

<일엔 철저·회의는 민주적>
취임 초부터 입버릇처럼「일」을 해야한다고 강조한 말 그대로 최 총리는 「일」에 철저하다.
서류하나라도 소홀히 넘기는 법이 없다. 실무자들의 기안내용도 수정·가필할 정도.
이 때문에 결재서류가 되돌아 나오고 수정한 서류가 다시 결재에 올려지고 한 일도 적지 않다는 얘기.
총리의 공식 업무는 대체로 △보고청취 △외부인사접견 △회의참석 △공식행사참석 △서훈·임명장수여 △서류결재…등.
최 총리는 취임 1백일동안 서울대 졸업식 등 공식행사에서 14번 연설을 했고, 다과회와 만찬은 약20회를 기록. 더구나 대외 비조찬 회의·비공식 만찬 등이 자주 열려 평균 이틀에 한번 꼴로 행사를 치러왔다.
국무회의나 각종 회의는 종전처럼 자주 열려왔지만 최 총리의 사회「스타일」은 민주적이라는 평.
회의에서 소수라도 이견이 제시되면 끝까지 토론을 계속케 하여 견해조정을 꾀하고 스스로 이론을 누르고 결론을 맺는 일은 거의 없다.
그 한 예가 구정공휴일 문제.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의 견해가 엇갈리자 미리 총무처의 보고를 받았으면서도 최 총리는 끝내 결론을 내리지 않고 보류시켰다.
총리 자신은 구정공휴일 반대론자이면서도 회의석상에선 반대의사를 명백히 밝히지 않은 신중형으로 행동했다.
그래서 최 총리 주재의 회의는 오래 끌기로도 유명하다. 주변정화 운동 방안을 협의한 관계장관회의가 4시간을 끌었고 같은 회의가 다음날에도 계속된 것이 그 한 예다.
최 총리는 이 같은「조정방식」과「충분한 의견교환」을 국무위원들에게도 권장. 간막이 철거 등 사무실분위기 명랑화를 지시한 최 총리는『장관들이 서로 서열을 따지지 말고 필요한 일이 생기면 점심을 같이 하든가 찾아가라』고 당부한 일도 있고 총리도 실제 서정쇄신문제 때문에 행정조정실장 실 등을 자주 드나들고 있다.

<휴일에는 신문을 정독>
부인과 딸만 함께 있는 공관에서의 생활에서는 서류를 보는 시간이 많지만 쉬는 시간엔 신문을 정독하고 서정쇄신·외교분야의 기사는 빼놓지 않고 다 읽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기자와의 접촉은 많지 않아 취임직후 출입기자들과 가진 첫 대면 외에는 1백일 동안 한차례 저녁식사를 같이 했을 뿐 기자회견을 가진 일은 전무한 상태. 『조용하게 일만하면 된다』는 평소 소신의 반영이기도 하겠지만 주말도 최 총리에겐「일」과 결부된다.
소양호「버스」추락사건이 일어난 일요일에는 현장에 달려갔고 인천·소사·서울근교의 각종 공사현장 시찰도 대개 일요일을 이용한 비공식 행사로 이루어졌다.

<불고기 집「파티」가 유행>
최 내각 출범이후 가장 주력한 분야는 역시 서정쇄신. 스스로 「골프」와 술자리를 피하는 최 총리는 취임 초부터 공무원 주변정화운동을 제창, 솔선수범하고 있다.
최고급이 아닌「한산도」담배를 즐겨 피우고 대형「캐딜랙」인 총리승용차를 타지 않으며 경호차를 대동하지 않고 출입하는 것 등은 그 좋은 예.
최 내각 출범이후 강화된 부조리제거운동은 「부인단속」·「비서단속」·「자식단속」으로부터 비위·부정의 과감한 척결, 부정공무원의 대량추방 등에 이르기까지 확대되고있고 그렇기 때문에 총리나 장관들의 몸조심은 한층 더해져 가는 경향이다.
장 차관이 자택손님대접, 요정 아닌 불고기 집 저녁 등이 유행하고 고급공무원이 친상을 당해도 신문에 부음을 내는 것조차 경계하는「초숙정」분위기.
올해 들어 징계된 공무원 수 (3월15일 현재)만도 9천2백 여명-. 이중 파면·해임이 4천1백명이고 군수, 읍·면장, 청장으로부터 국영기업체 사장 등에 이르기까지 그 폭은 확대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하는 서정쇄신작업이야말로 최 내각이 당면한 내정의 최대과제가 되어있으며 최 내각의 공과평점도 바로 이 문제와 연결 지어 질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자기사람 심는 인사 삼가>
최 총리와 함께 입각한 장관은 외무·내무·농수산·보사·체신·문공·두 무임소 등 8부 장관.
서정쇄신의 고창과 최 총리의「신중」자세로 모두들「자기 사람」심는 인사를 하지 않았으며, 김성진 문공장관 같은 이는 심지어 전임자의 비서관까지 그대로 활용.
정치장관으로 불려지는 신형식 제1 및 내각권 제2무임소장관도 전임장관「스탭」을 전원 인수받았다.
10여년만의 해외근무 끝에 본부로 들어온 박동기 외무장관은 최 총리의 청와대 특별보좌관 당시의 특론이기도 했던 대「유엔」외교전환을 과감히 천명, 호흡을 맞춰가고 있고 16년만에 내각에「컴백」한 신현확 보사장관(자유당 때의 부흥장관)은 대민 접촉의 부조리를 우려한 부하들이 민원업무의 우편처리를 건의하자 『민원인들을 만나 적극 봉사하는 자세를 취하라』고 적극적인 대민 봉사행정을 지시.
없어졌던 하급직 수당 부활, 교환양「아파트」건설 등에 힘을 쏟은 박원근 체신장관은 점심시간을「공무의 연장」으로 어겨 국장들과 구내식당 점심으로 자유토론시간을 갖는 것이 상례. 부조리 제거에「혁명적 결의」를 내보인 김치열 내무는 우선 경찰 숙정부터 단행했다. 김성진 문공장관은 영화 등에서의 퇴폐풍조추방에, 제1·제2무임소장관은 각기 수도권 인구억제·물자절약방안 수립으로 바쁘다.

<공무원의「좁쌀화」우려>
『최고의 정치는 국가를 보위하는 일이다』-. 지난 95회 임시국회에서 최 총리는 야당의원으로부터『최 총리는 정치를 아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변했다.
출범 1백일을 맞으며 최 내각은 안보와 경제·외교 등에 있어 많은 난제를 맞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앞길이 반드시 순탄하다고만 점칠 수도 없다.
조심스런 처신과「근신형」풍조가 행정부의 적극성과 활기를 잃게 하고 공무원들이 이른바「좁쌀화」를 가져 올 원인이 된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10%이내의 물가 억제」「수출 65억 달러 달성」은 물론 한미일간의 현안해결, 남북문제 등 전력투구를 해도 힘겨운 과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는가 하는 것도 최 내각의 명운과 직결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출범 1백일을 가지고 최 내각 과공을 평점하기는 아직 빠르다. <송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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