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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삼성 새판짜기, 60년 제일모직 간판 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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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삼성이 그룹 내 ‘깜짝 빅딜(대규모 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삼성SDI와 제일모직을 합병해 자산 규모 15조원, 연 매출 10조원 규모의 거대 소재·부품 기업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삼성SDI는 이번 합병을 통해 매출 기준으로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에 이어 그룹 내 전자 계열사 중 3위로 올라서게 된다.

 두 회사는 31일 각각 이사회를 열어 1(삼성SDI) 대 0.4425(제일모직)의 비율로 합병하기로 결정하고, 7월 1일까지 합병 절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합병 방식으로는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흡수한 다음, 회사명으로 ‘삼성SDI’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1954년 그룹의 모태 기업으로 출발했던 제일모직이 6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이번 합병 발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진행 중인 삼성그룹 사업 구조 개편 작업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말했다. 이번 합병 역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은 지난해 4분기에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를 삼성 에버랜드에 넘기는 한편, 에버랜드에서 식자재 사업과 건물관리 사업을 각각 자회사인 삼성웰스토리와 보안업체 에스원 소속으로 떼내는 방식으로 1차적인 사업 구조조정을 한 바 있다. 삼성은 올해에도 계열사별로 ‘헤쳐모여식’ 구조 개편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우선 지난해 말 에버랜드에서 물적분할된 급식·식자재 업체 삼성웰스토리는 상반기 내 호텔신라에 흡수·통합될 예정이다. 또 삼성은 삼성물산(건설부문)과 삼성엔지니어링·에버랜드 등으로 흩어져 있는 그룹 내 건설부문을 합치는 등 계열사 구조 개편도 서두르고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삼성이 경쟁력 있는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판을 다시 짜는 ‘선택과 집중’ 전략하에 이뤄지는 작업”이라며 “향후 2~3년 동안 이런 방식의 그룹사업 구조 개편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합병에 대한 시장 반응도 긍정적이다. 특히 삼성그룹 전자 계열사들은 삼성전자를 큰 축으로 ‘소재(제일모직)-부품(삼성SDI)-완제품(삼성전자)’으로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를 구축하게 됐다. 무엇보다 삼성그룹이 신성장동력으로 육성 중인 2차 전지와 첨단 소재 사업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현대증권 김동원 연구원은 “두 회사의 합병은 상호보완적 측면에서 좋게 평가할 수 있다”며 “삼성SDI는 수익성 부재, 제일모직은 성장성 부재라는 고민이 있었는데 그룹 내 빅딜이라는 방식을 통해 일거에 해소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성진 삼성SDI 사장도 “제일모직이 갖고 있는 소재 기술은 배터리를 기반으로 한 2차 전지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라면서 “모바일 기기뿐만 아니라 전기차·에너지 저장장치(ESS) 등 2차 전지 분야에서 시너지를 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소재 등 차세대 자동차 분야에서 삼성SDI가 삼성그룹의 전진 기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룹 내 기술 싱크탱크인 삼성종합기술원 인력들도 6월 말까지 경기도 수원에 있는 전자소재 연구단지로 순차적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전자소재 연구단지에는 삼성전자와 삼성SDI·제일모직·삼성정밀화학 등으로부터 파견된 연구원 3000여 명이 투입돼 소재 연구에 주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분구조에 있어서도 이번 인수 합병은 삼성그룹에 큰 효과를 가져다 줄 전망이다. 현재 제일모직은 최대주주가 국민연금(11.6%)이며, 2대 주주는 한국투자신탁운용(6.94%)이다. 반면 삼성카드 등 삼성 계열사는 총 7.27%를 보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합병이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통합법인에선 삼성SDI의 1대주주인 삼성전자가 총 지분율 13.5%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된다.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그룹 내 지분 구조가 현재보다 훨씬 튼튼해지는 셈이다.

 삼성은 제일모직이 갖는 그룹 내 상징성을 감안해 ‘제일모직’이라는 법인명을 삼성에버랜드에서 사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지배 구조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에서 가장 오래된 상호인 제일모직을 사용한다는 의미도 있다.

 삼성에버랜드 관계자는 “에버랜드는 고유한 테마파크 브랜드로 존속시키면서 사명을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면서 “제일모직을 사명으로 쓰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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