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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첫째의 8시간은 일을 위해, 둘째의 8시간은 휴식을 위해, 나머지 8시간은 우리들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1886년5월1일 미국의 노동자 19만명은 일제히 일손을 놓고 시위를 하며 이런 노래를 불렀었다.
이보다 앞선 1884년, 노동기사단을 비롯한 미국의 각 노동단체들은 매년 5월l일을 기해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제너럴·스트라이크」(총파업)를 벌이기로 결의했었다. 86년5월1일은 그 최초의 시위운동일로 지정된 날이었다.
그 결과 적어도 4만2천명의 노동자들이 「스트라이크」에 의해, 다른 15만명이 「스트라이크」에 의하지 않고 노동시간을 단축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무렵 「시카고」에서는 노동자들과 경찰이 충돌, 피를 흘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주동자 5명에게는 사형·3명에게는 금고가 선고되었다.
바로 이날 하오엔 「매코믹」농기공장에서도 분쟁이 벌어져 회사는 참가조합원 수백명을 집단해고 해버렸다. 이들 대신 3백명의 「핀커트」탐정국원들이 「쟁의 파괴단」으로 고용된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런 일로 쌍방은 난투를 벌이고 다시금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의 축제일이 되고 있는 「메이·데이」의 유래는 이처럼 피로 얼룩져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46년5월1일 처음으로 노동절기념식이 열렸다. 그러나 당시의 기념식은 두 곳에서 거행되었다. 좌익계 노동자들은 서울운동장 육상경기장에서, 그리고 우익계는 그보다 앞서 3월10일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각각 노동절을 기념한 것이다.
3월10일이 「근로자의 날」로, 노동절을 대신하게 된 유래는 바로 1946년3월10일에 있다.
오늘날의 노동절은 2백년 가까운 「피의 역사」를 갖고도 여전히 근로자의 복지와 후생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8시간 노동」만으로는 아직도 생계를 보장받을 수 없는 근로자들이 많다. 한편 산업의 발달과 함께 생계의 문제 못지 않게 공해도 노동자들을 위협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공해는 눈에 보이지 않게 많은 노동자들의 생명까지도 좀먹고 있다. 생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요즘 노동자들이 도전 받는 최대의 과제인지도 모르겠다.
기계문명은 한때 인간의 기능을 업신여기는 듯 하더니, 이제는 그 경지를 넘어 인간을 공해의 수렁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노동절은 적어도 인간회복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날로서 뜻이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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