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의 실태조사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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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많은 근로자들의 기대를 모았던 중앙노사간담회가 임금인상에 대한 아무런 구체적 제안도 없이 끝난 것은 매우 실망적이다.
정부관계자·근로자·사용자를 각각 대표한 이 3자 회담이 「임금」이라는 비견할 수 없는 중대사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간담회」인 이상 어떤 포괄적인 정책방향의 설정이나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기에 부적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간담회는 적어도 현재로서는 노사관계의 종합조정을 위한 거의 유일한 공식적인 협의기구라는 점에서 보다 진지한 협의와 건설적 건의가 있기를 기대해 온 것이다.
특히 올 들어서는 각계에서 저임금문제에 대해 각별한 관심들이 표명돼 왔고 정부쪽에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듯하여 근로자들의 기대가 한결 부풀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열린 간담회가 겨우 저임금의 단계적 개선이라는 원칙적인 공동결의문의 채택만으로 끝나 버린 것은 어느모로도 만족스러운 귀결이었다고는 볼 수 없다.
당면한 노사문제의 기본과제는 두말할 필요 없이 상식이하의 부당임금을 포함한 광범한 저임금체계를 개선하는 일이므로 핵심적인 관건은 사용자측이 쥐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원만한 노사관계의 유지를 위한 1차적인 노력은 사용자의 보다 성의 있는 접근자세에서 비롯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더욱이 현행의 관계법령이 근로자의 독립적인 쟁의권한을 여러 각도에서 제한하고 있는 처지에서는 노사간의 자발적인 협조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기업가중에는 아직도 저임금을 자본축적의 유일한 기반으로 잘못 인식하고, 장식을 벗어난 부당임금을 예사로 생각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제조업부문의 평균임금이 아직도 월3만5천원 내지 4만원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섬유의복·피혁·고무공업에서는 3만원대에 머무르고있는 현실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그뿐인가. 일부 영세업체들은 1만원미만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놀라운 현실이다.
기왕 정부가 이런 수준이하의 임금을 개선하기로 방침을 세웠다면 차제에 모든 업종과 지역을 망라한 저임금실태부터 충분히 조사하도록 권하고 싶다. 이런 자료를 토대로 우선은 최소한 해당업종이나 지역의 평균임금수준까지 올려주도록 목표를 세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이 같은 1차목표의 달성만해도 상당한 과단성과 부작용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영세기업은 자금난의 가중에 직면할 수도 있고 일부 수출업체는 원가상승으로 인한 경쟁력 저하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뿐이며, 임금체계개선이라는 막중한 과제와 비견될 성질의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일시적 자금난은 세제, 금융의 지원으로, 경쟁력약화는 생산성증대와 경영개선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아직도 우리 제조업의 노무비비중이 너무 낮고, 생산성증가율이 항상 노임상승을 앞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여건하에서는 이 같은 개선이 노사간의 협의만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실점이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의 직접적인 행정지도가 불가피할 것이다. 1차적인 저임금개선이 이루어지면 전반적인 임금체계의 모순이나 불합리도 단계적으로 시정하도록 연차별실행계획을 세우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계획의 근간은 역시 최저임금제의 채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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