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감시 대상이 首長" 술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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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관의 요시찰 대상자가 그 정보기관의 수장(首長)이 된다. 고영구(高泳耉)변호사가 국가정보원장에 내정된 것이다.

재야인권 변호사의 발탁은 1961년 김종필(金鍾泌) 초대 중앙정보부장의 등장에서부터 25대 신건(辛建)국정원장에 이르기까지 42년 정보기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향후 국정원에 몰아칠 변화의 바람과 그 강도를 짐작케 한다.

국정원 관계자들은 25일 재야인권 변호사 출신인 高내정자의 국정원장 발탁에 대해 일단 긍정적 반응이다. "정권에 따라 영.호남 대립구도가 반복돼 왔으나 강원도 출신이 오게 돼 지역 시비가 없어질 것 같다"고 말한다.

김영삼(金泳三)정부 시절에는 영남 출신이, 김대중(金大中)정부에선 호남 출신이 약진하던 악순환의 고리를 이젠 끊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노무현(盧武鉉)대통령과 코드(철학)가 같은 사람이고, 신망이 있는 분이라 국정원으로 봐선 위상 재정립을 위해 잘된 것"이란 평가도 나왔다.

그런 가운데 불안감도 읽을 수 있다. 한 국정원 직원은 "과거 정부에서 승승장구해온 간부들은 좌불안석"이라고 전했다. "1(해외).2(국내).3(북한담당)차장 및 기조실장으로 누가 오는지 알아보기 위해 거의 매일 전화로 인사 진행상황을 확인하고 있다"고도 했다.

高내정자는 국정원의 이같은 동요를 의식한 듯 "국회 인사청문회 전까진 국정원 개혁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盧대통령은 국정원으로부터 국내정치 보고를 받지않고 있고, 국정원 직원의 정당.정부 부처.언론사 출입도 금지시킬 방침임을 밝힌 바 있다. 국정원이 가졌던 힘의 근원인 국내 정치사찰을 없애겠다는 뜻이다.

高내정자도 이같은 가이드 라인 내에서 국정원을 개혁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정원의 탈(脫) 정치권력화를 위해 조직과 기능을 대수술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더욱이 高내정자가 초대 회장을 지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국정원의 보안사범에 대한 수사권 폐지▶기획 및 조정 권한 폐지▶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국정원 예산의 통합 및 국회의 통제강화▶신원조사 범위 축소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중 상당 부분이 수용될 것이란 전망이 청와대 주변에서 나온다.

국내정치 분야의 인력을 해외로 돌려 활용하겠다는 盧대통령의 구상을 현실화하는 것도 高내정자의 과제다.

盧대통령은 "인력 감축은 없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국정원 직원들은 "인원 정리의 신호탄 아니냐"고 동요하고 있다.
강민석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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