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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무속신앙의 풍속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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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해 용왕님. 모두 모여 내 소원 좀 들어보소. 아들자식 3형제가 입신출세하여 부모공경 잘하도록 사가타 용왕님 소원성취 비나이다』. 50대여인의 애절한 목소리가 수 용추계곡을 타고 메아리진다. 소복 단장한 조복실씨(54·대전시 관화1동)는 3m높이의 폭포수 옆에 흰쌀밥과 시루떡을 차려놓코 용왕님께 치성을 들인다.
입술과 두 뺨을 빨갛게 칠한 젊은 무당 김명희 여인(26)이 조씨의 옆에 서서 목탁을 치며 연방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어 댄다.
계룡산 신도안가운데서도 수용추골은 무속신앙의 본산지. 미꾸라지가 수용이 돼 등천했다는 전설이 담긴 수용추골에는 가히 발 들여놓을 틈도 없이 곳곳에 50여개나 되는 석단과 기도소가 들어서 있다.
가파른 바위골짜기를 기어오르다 발붙일 자리만 있어도 재단을 차려 산신을 모시고 형형색색의 암자와 석굴을 만들어 놓았다. 매주 일요일이면 새벽부터 시루떡과 쌀자루를 머리에 인 아낙네들이 대전·논산·공주 등지에서 수백명씩 몰려든다.
「샤머니즘」의 요소는 유사종교의 공통적인 성격. 신흥종교들은 5천년역사를 통해 의식구조밑바닥에 깊숙이 뿌리 박힌 무속적 경향에 영합, 쉽게 설복력을 얻는 듯 했다.
수용추골 중턱 한적한 바위틈에 암자를 차린 45세의 한 이 여교주는 주민들 사이에 『남자 홀리는 불여우』로 통했다.
젊을 때는 미인소리를 들었다고 자랑하는 이 여교주는 달변에 교태까지 겹쳤다.
『사업에 성공하는 것은 걱정할 것 없어. 쌀2말에 광목1필을 갖고 와 치성을 들여. 그 대신 나와 단둘이 밤샘기도를 드려야지』
이 여 주교는 사업운을 들으러오는 남자신도에게 이따금 알쏭달쏭한 조건을 내건다는 것.
주민들 중에는 이 여교주가 한동안 대전에 사는 추상술(가명)이라는 30대 남자를 때때로 불러들여 암자에서 단둘이 정사를 즐기는 것을 엿본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요즘은 추씨의 내왕이 끊기고 여교주 자신이 툭하면『출행간다』며 암자를 비우고 며칠씩 나갔다 돌아온다고 했다.
무속계 종파의 여교주는 대부분 가정생활의 불행을 겪고 가출한 여인들. 그래서 거의 모든 유사종교의 여교주가 생에는 무관심 한편. 그러나 반대로 그 욕구가 절륜한 경우도 더러는 있다.
무속계 사이비종교 교리 속에는 선정적 요소를 강하게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무속계의 일월산기도원 교주 김성복씨(43)는『하느님의 화신인 교주의 피를 받아기도 하라. 그러면 불치의 병을 고치고 영화를 누린다』고 설교, 여신도들을 농락하다 쇠고랑을 찬 일이 있다.
교주 김은 19세 이상 여인7명과 19세 이하 처녀7명 등 14명으로 「7선녀」2개조를 만들었다. 김은 이들을 자신의 기거지인 칠선당에 하루씩 교대근무(?)를 시켰던 것. 김 교주는 기도로 비처녀를 처녀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여수좌 5백명을 유린해 한 때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용화교의 경전에도 『양중투음하고 음중투양하면 이 어찌 조화선경 아니런가』하는 대목이 있었다. 위장된 선정적 요소를 교리 속에 담은 것.
수용추골에 못지 않게 무당이 들 끊는 곳은 신도안 용동리에서 5㎞쯤 떨어진 암 용추골.
둥글게 움푹 팬 바위 속에 암용이 알을 품어 승천했다는 곳. 이런 전설 때문에 주민들은 물론 각지에서 소원성취를 비는 신도의 행렬이 요즘도 끊이질 않는다.
16일 상오5시 전남해남에서 완행열차 편으로 왔다는 박성식씨(47)는 『음력정월에 용왕님을 모셔야만 1년 운수가 튄다』고 믿고 있었다. 박씨는 13년 동안 해마다 음력정월이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결혼한지 15년째 된다는 김구선씨(44·상업·충남 금산군 금산읍)는 아들을 얻지 못해 부인과 함께 계룡산의 「영기」를 타러 왔다는 것.
김씨는 암 용추골에서 부인 박영자씨(40)는 숫 용추골에서 2일 동안 따로따로 치성을 들이고 있었다. 암 용추골은 한 때 유부녀들의 탈선장소로 주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곳.
치성을 들인다는 구설로 이 곳을 찾아온 유부녀 가운데는 3∼4일씩 암자에 묵으며 「엉뚱한 재미」를 즐기다 가는 유한 층이 많았다.
그러나 경찰의 정화작업이 시작된 지난해8월 이 후 이 일대 여관들은 모두 없어지고 골짜기 바위·정자나무 등에 치렁치렁 매달렸던 깃발 헝겊이 철거됐다. 무당·여교주들이 푸닥거리 할 때 쓰던 청룡도와 삼지창도 경찰에 모두 압수 당했다.
지금은 10여채의 무당주택들만이 치성 들이러 오는 신도들을 재워주고 밥을 지어주며 명맥을 겨우 지탱하고 있다. 무속신앙의 본산 용추골도 전성기를 넘긴 듯 했다. <계룡산=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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