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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위는 도구로, 박인비는 감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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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미셸 위(사진 위)는 LPGA 투어 선수 중 캐디백에 가장 많은 퍼트 연습 도구를 넣고 다닌다. 연습 그린에서 1m 길이의 판, 쇠구슬, 원형 봉 등 갖가지 도구를 꺼내놓고 퍼트 연습을 한다. 박인비는 정반대다. 가끔 손목 고정력이 좋은 벨리 퍼터를 사용할 뿐 도구를 거의 쓰지 않는다. 브레이크를 잘 보고 정확히치면 도구가 필요 없다는 쪽이다. [샌디에이고=성호준 기자]

LPGA 투어 기아 클래식 1라운드가 열린 28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인근의 아비애라 골프장. 박인비(26·KB금융그룹)와 미셸 위(25·미국)는 한 조로 경기했다. 당연히 연습 그린에서 두 선수는 같은 시간에 연습을 했다.

 미셸 위의 캐디는 캐디백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퍼트 연습 도구들이다. 미셸 위는 직선을 그어놓은 플라스틱 판에 쇠구슬 두 개를 올려 넣은 도구를 먼저 썼다. 구슬 사이는 공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다. 퍼트한 공이 쇠구슬을 건드리지 않고 플라스틱 판을 지나가면 정확히 스트로크된 것이다. 또 미셸 위는 1m 정도 길이의 얇은 막대 위에 공을 올려놓고 퍼트를 했다. 막대의 폭은 공 하나 겨우 놓을 정도다. 정확하게 스트로크되지 않은 볼은 막대에서 떨어지게 설계된 것이다.

 미셸 위는 또 지름이 10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원통형의 금속을 치기도 했다. 페이스가 수직으로 임팩트되면 원통이 앞으로 나갔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 옆으로 확 틀어졌다. 미셸 위는 또 공 바로 앞에 티를 두 개 꽂아 놓고 양쪽 티를 동시에 치는 연습도 했다.

 선수들은 가방에 퍼트 연습 도구 하나 정도는 가지고 다닌다. 매일 쓰는 선수도 있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스윙 점검용으로 휴대하는 선수도 있다. 미셸 위는 살림이 많은 편이다.

 박인비의 퍼트 연습 방법은 반대다. 박인비는 도구를 쓰지 않고 그냥 툭툭 퍼트를 했다. 박인비는 “그린 잘 읽고 똑바로 치면 되는데 굳이 무슨 도구를 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박인비의 약혼자이자 코치인 남기협씨는 “스트로크를 좋게 하기 위해 가끔 벨리 퍼터(배꼽까지 닿은 긴 퍼터)로 연습하는 것 말고는 도구를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씨는 또 “인비는 퍼터가 약간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는 스윙을 한다.

그것에 익숙해졌고 그 감으로 거리를 잘 맞춘다. 선을 그어 놓고 연습한다면 선을 따라 치지 못했을 경우 확 엇나가게 된다. 특히 긴장감이 큰 중요한 순간에 이런 기계적인 퍼트는 부담이 될 것 같아 연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운정(24·볼빅)은 58도 웨지의 날로 퍼트 연습을 가끔 한다. 스트로크를 정확히 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퍼트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연습 그린에서 웨지로 하는 퍼트가 더 잘 들어가기도 한다.

 실제로 대회 중에 웨지로 퍼트를 하는 선수가 가끔 보인다. 화가 나 퍼터를 부러뜨렸거나 물속으로 던져버린 경우다. 미겔 앙헬 히메네스(50·스페인)는 경기 중 퍼터를 부러뜨리고 웨지로 3홀 연속 버디를 잡은 적도 있다. 최운정은 “나는 겁이 많아 아무리 화가 나도 퍼터를 버리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미셸 위는 스윙을 데이비드 레드베터에게 배우고 있다. 레드베터는 극도의 긴장 속에서도 통하는 완벽한, 기계 같은 스윙을 추구하는 교습가다. 그러나 지나치게 기계적이어서 오히려 경직된 스윙이 나온다는 비판도 있다. 레드베터 이전 선생님이었던 게리 길크리스트는 “미셸이 레드베터에게 간 후 예전의 부드러운 템포가 사라졌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려 하기 때문에 오히려 리듬감이 사라져 슬럼프에 빠졌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퍼트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박원 J골프 해설위원은 “퍼트 연습 도구는 장점도 있지만 메커닉스(구조·기법)에 너무 집착하면 방향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리듬과 거리감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숙소에서 퍼트 도구로 연습하는 것은 좋지만 연습그린으로 나오면 짧은 퍼트부터 긴 퍼트까지 루틴을 지키면서 연습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미셸 위는 올해 들어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허리를 90도로 굽힌 퍼트 자세에 적응해 그렇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가장 좋아진 것은 아이언샷(그린 적중률 80%, 2위)이며 퍼트 순위는 중하위권(라운드당 퍼트 수 30.44, 81위)이다. 퍼트 순위가 119위에서 오르긴 했지만 퍼트 실력이 좋아져서인지 아이언샷을 핀에 가깝게 붙여서인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날 박인비는 3언더파 공동 7위, 미셸 위는 2언더파 공동 12위였다. 두 선수 퍼트 수는 똑같이 30개였다. 미셸 위는 시즌 평균보다 좋았고 박인비로선 퍼트를 매우 못한 날이었다. 박인비는 “오늘 샷이 아주 좋아서 매 홀 5m 이내에서 버디 퍼트를 했는데 홀 바로 옆에 붙은 두 개와 1.5m 퍼트 하나 말고는 들어간 게 없다”고 아쉬워했다.

 이 골프장은 퍼트가 어렵다. 그린 잔디로 쓰는 포아 애뉴아는 자라는 속도가 일정하지 않은 종이다. 잔디를 자른 직후엔 별문제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울퉁불퉁해진다. 오후가 될수록 어려워진다. 먼 거리 퍼트를 할 때는 강하게 치기 때문에 울퉁불퉁한 요철을 넘어가지만 짧은 퍼트는 상당히 어렵다. 선수들이 1m 정도의 퍼트를 남기면 곤혹스러워 한다.

샌디에이고=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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