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미명아래 부활한「불씨」/버스 계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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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시내「버스」운송사업조합(이사장 정용낙)과 전국자동차노조 서울좌석「버스」지부(지부강 유춘근)및 서울「버스」(일반) 지부(지부장 윤만중)가 계수기를 철폐한지 30일만에 다시 부착하기로 합의한것은 한마디로 승차인원측정에 더 뾰족한 묘책이나 대안이 없었기때문이다.
태광운수소속 안내원 이영옥양(20)의 할복자살기도사건(1월5일)을 계기로 자동차노조측의 철거요구와 당국의 종용으로 사업조합측이 지난달12일 자진철거 형식으로 계수기를 떼어낸뒤 한달동안 노·사양쪽은 다같이 동병상련의 고민을 해왔다.「버스」운송사업 조합측은 철거직후부터 예상했던대로 입금액이 하루평균 대당 3천∼5천원쯤 줄어 막심한 피해를 입고있다는 주장이다. 계수기가 부착돼있을 당시의 하루 대당「로스」5백∼1천원에 비하면 5∼6배로 50대를 갖고있는 회사일경우 하루 평균 15만∼25만원씩 안내양의「삥땅」으로 새어나간다는것.
게다가 각「버스」회사는 운수업에서 반드시 필요한 운송량을 파악할수없어 사업의 변동상황을 알수없고 따라서 새로운 기획이 마비됐다고 말하고 있다. 회사에 따라서는 계수기철폐와 동시에 종전처럼 계수원을 승차시켜 운송량측정을 했으나 대부분은『부작용을 일으키지 말라』는 당국의 엄포에 눌려 이것조차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때문에 각 회사에서는 액수가 커진「삥땅」을 막기위해 더욱 안내양들에게 신경을 쓰지않을수 없었다는 것이 사업 조합측의 솔직한 고백.
그러나 안내양과 노조측에서도 고민은 마찬가지. 첫째 여감독의 안내양에 대한 몸수색과 감시가 더욱 심해졌다는 주장. 안내양들은 계수기철폐이후 감독들이『당연히「삥땅」을 하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자백을 강요, 종전보다 인권유린행위가 더 늘고 심해졌으며 이때문에 근무중 항상 불안감을 버릴수 없다는것.
둘째는 종전에 계수기계산과 가까운 금액을 입금했을때 주던 포상(월1만원 내외)제도가 없어져 양심적인 안내양들의 수입이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것이고 셋째는 운전사들이 계수기가 없다는 이유로 안내양에게 돈을 요구하는 일이 많아졌고 이를 물리칠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일부 안내양들은 차라리 계수기부활을 환영하고 있는실정. 계수기가 회사측이 자기들을 불신하는 표상이긴하지만 계수기를 떼어낸뒤에 더욱 심해진 불신풍조와 감독의 인권유린행위 때문에 계수기를 달더라도 인간적인 모욕을 덜 당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양측의 극단적인 감정대립. 사업조합측은 계수기 철거후의 안내양「삥땅」「케이스」몇개를 검찰에 고발, 형사입건토록 한것으로 알려졌는데 종전까지는「버스」회사가 안내양의「삥땅」을 이유로 고발한일은 없었다.
이같이 말썽이 계속 생기고 서로의 고민이 깊어지자 노·사양측은 지난달말부터 접촉을 시작, 10일 양쪽(2명씩)을 대표한 전문위원4명이 다시 계수기를 부활, 운영의 묘를 살리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자동차노조본부는 지부와 의견을 달리해 계수기부활을 반대하고 나섰으며 배상호노총위원장, 탁희원 교수(성대)도 반대입장을 취해 문제는 쉽사리 갈아앉지 않을것같다.
달아도 말썽, 떼어도 말썽인 계수기를 노·사가 함께 운영의 묘를살려 시민이 바라는「서비스」개선이 이루어질지는 두고봐야할것같다. <신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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