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손의 철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한국「프로」권투「주니어·플라이」급「챔피언」김성준(24·서울서대문구홍제동11의23)의 철권은 소매치기로 다져진 부끄러운 주먹이었다.
그는 구두닦이에서「챔피언」으로 입신하는동안 검은손의 세계에서 빽따기(「핸드백」전문털이)의「챔피언」이란 또하나의 떳떳치 못한「타이틀」을 안고 방황해야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은 서울A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7세때인 69년부터 광화문일대에서 구두닦이를 하다가 같은 구두닦이이며 소매치기인 김영일(당시20세)을 따라 검은손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는것.
가정형편으로 중학진학을 못한채 가출했던「챔피언」김은 김영일과 의형제를 맺고 소매치기 초보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김이 빠른동작으로 남보다 빨리 소매치기기술을 익히자 김영일은 당시 빽따기조직중 가장 규모가큰 김봉호파의 두목 김봉호(35·수배중)를 소개해주었다. 김봉호의 일꾼이된 김성준은 1년만에 치기배사회에서 손꼽히는 고수급이 됐지만 어릴때부터의 꿈인 귄투선수가 되겠다는생각은 버릴수없었다.
이같은 김성준의 꿈과 천부적인 소질을 알게된 두목김은 마포에있는 D도장에 나가 연습을 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권투를 배운지 2년만인 72년2월5일 김성준은 김봉호를「매니저」로 삼아「프로·복싱」「플라이」급에「데뷔」했다. 치기배 동료들이 시합장에 나와 열렬히 응원했으나「데뷔」전은 판정패의 고배를 들어야했다.
그러나 2차전부터 연승을기록, 74년초에는 상위「랭킹」에 올랐고 75년6월「주니어·플라이」급「랭킹」2위에 올랐다. 김은 지난해 8월31일 부산구덕체육관에서「챔피언」문명안선수를 10회판정으로 물리치고 꿈에 그리던「챔피언·벨트」를 맸다. 이때부터 김은 치기배사회에서「챔피언」김으로 통했다. 그러나「챔피언」이되고서도 월평균 5만원수입으로는 5식구의 생활이안돼 치기배생활에서 손을 떼지못했다.
검찰이 김의 정체를 안것은「챔피언」이된 직후. 검찰은 김의 자질을 아껴 자수를 권고, 마침내 2차방어전을 15일앞둔 1월10일 자수해왔었다. 검찰은 두목 김과함께 자수하면 관대하게 다루겠다고 약속, 훈방했다. 그러나 그는 약속을 어기고 일당과함께 행방을 감추었다가 7일 검거돼 쇠고랑을 차게됐다.
이번사건은「챔피언」까지 올라간 선수가 생활의 궁핍을 면치못하고 있는 체육계의 현실에 대한 문제점과 특히 지난한해동안 잇달아 실시됐던 검찰과 경찰의 소매치기 일제단속에도 소매치기가 줄기는커녕 지난10년간 연평균 4·1%씩 감소돼오던 추세를 뒤엎고 지난1년동안만도 6천6백2건의 소매치기 사건이발생. 10·6%의 증가율을 보였다는등 커다란 사회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