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8)분수를 지키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5년의 해외생활 끝에 고국을 방문한 재미교포 P씨는 예상보다 급변한 조국의 문물에 연거푸 충격을 받았다.
미국으로 떠날 당시의 가난에 찌든 주변환경을 기억하고 있는 P씨에게는 공항에 마중나온 형님이 무명 두루마기에 찌그러진 중절모자를 벗어 던지고 「커프스.버튼」에 「넥타이」차림으로 「잠바」를 입고 있고 구식 결혼식을 올린 형수의 손톱에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으며 머릿결이 좋지 않은 조카가 미국의 청소년과 똑같은 장발에다 「블루진」을 입고 있는 것 부터가 색다른 조국의 「발전」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쭉뻗은 고속도로, 국제도시로 손색없는 서울의 「빌딩」숲과 자동차행렬, 여성들의 현란한 몸치장등… 모두가 얼핏 경이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두어말 머무르는 동안 P씨에게도 차차 조국의 「발전」에 대한 실상과 허상이 구별돼 나타났다.
『돈이면 다된다』는 생각이 갖가지 병폐를 유발하며 우리의 생활에 「리듬」을 깨뜨린 사례는 「빽」「사바사바」「가짜」「상료」등 해방후 이제까지 우리사회를 휩쓸다 명멸해간 각종 유행어의 변천 과정에서 여실히 엿볼수 있다.
그리고 돈의 중용지도(중용지도)를 지키지 못해 생활의 조화를 깨뜨린 사례는 작년에 부쩍 열을 올린 부조리제거작업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고소득층과 그 2세의 방종과 외화도피, 공무원의 각종 수회.독직사건등이 단적으로 말해준다.
미처 소화되지 못한 물질문명의 혜택은 도처에 경제생활의 부조화와 무절제를 가져와 논 한마지기 짓는 농부도 몸이 나른하면 보리쌀 한되 값이나 되는 「드링크」제를 사 마시고 들로 나가게끔 되었고 「긴장의 해소」와 「피로회복」이라는 「레크리에이션」본래의 뜻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레저」를 광란이나 다름없는 놀이에서 찾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일부 가정주부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쇼.걸」의 그것에서 찾으려하는 데는 유행에 O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몰래 숨겨 파는 외제화장품과 「액세서리」가 불티나게 잘 팔리고 있는 것과 여자대학의 서점들이 폐점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한국여성들의 외형미가 국제수준을 향해 발돋움하고 있는 반면 내면미는 퇴보하고 있음을 보여줘 기형적인 국가발전에 대한 위험을 반증했다.(조언=서울대 김태길 교수.김기두교수)<전육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