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벌여온 근대화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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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인근 강대국들의 영향력을 꾸준히 배제하면서 「이란」왕국을 오늘의 부국으로 이끌어 올리는데 내재적 요인이 된 백색혁명(White Revolution)이 26일로 13돌을 맞는다. 지난 1주일 전부터 「이란」전역은 3색 국기를 내걸고 축제 속에 들떠있다.
「이란」의 국민혁명인 이 백색혁명은 정신문화와 사회경제의 발전을 「모토」로 하는 비정치적 개혁으로 지난 13년 간 각 부문에 걸쳐 뚜렷한 결실을 맺게되자 백색혁명의 창안자이자 기수인 「팔레비」국왕은 이를 내정의 기본으로 추진하면서 국가안정을 적극적으로 꾀하고있다.
먹을 것이 없으면 굶어야했고, 간판이 있어도 읽을 사람이 없고 병이라도 걸렸다하면 「메카」를 향해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던 과거의「이란」-.
이러한 내적 부실을 깡그리 없앤 후 석유를 토대로 제4세계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하기 위해 국왕이 내세운 것이 백색혁명이란 것이다.
백색혁명의 특징은 모든 개혁이 하나하나씩 독립해서 이루어지며 혁명단원이 개혁운동의 핵심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 봉건지주의 타파로 근대국가를 이룩해보자는 토지개혁은 당시의 상황으로선 폭동을 야기하기에 충분한 혁명적 조치였다. 때문에 대지주와 지방토호의 폭동을 진압해야했고 이들의 불만을 이용한 일부세력의 「데모」를 힘겹게 막아야만 하는 나쁜 조건 속의 출범이었다.
이러한 우여곡절 속에서 대지주의 땅을 장기연불로 사들인 후 소작농에게는 역시 장기상환으로 불하함으로써 토지개혁에 성공, 1백% 수입에만 의존해오던 곡식·채소·과일을 거의 자급자족의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가 있었다.
1차 개혁의 완결과 동시에 64년에 보건단과 국토개발단을 창설하면서 법률 앞의 평등을, 67년에는 수자원의 국유화·농촌진흥·행정 및 교육개혁을 새로운 사업으로 제시한 후 전국적으로 실시 중에 있다.
그러나 석유수입으로 인한 급격한 부의 유입으로 급속화하기 시작한 사회변화의 속도에 따를 만큼 백색혁명이 효과적이며 신속할 수 있느냐는 점이 하나의 의문으로 남는다. 【테헤란=이근량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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