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의 인간 모럴 탐조-연재소설 『겨울여자』를 마치고 -조해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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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선 즐거웠던 일부터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여태껏 거의 부정기적으로만 만나오던 독자들을 정기적으로 그것도 매일매일 만날 수 있었던 일이다. 잡지나 책을 통하여 독자들과 만날 때에는 독자들과 내가 직접 만나고 있다는 실감을 그렇게 뚜렷이 가질 수는 없었으나 신문을 통하여 매일매일 독자들과 만나게 되면서 나는 독자들과 내가 서로 살갗을 맞대고 있는 듯한 친밀한 연대감을 맛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독자들과 내가 매일매일 만난다는 즐거움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하루에도 여러 통씩 보내오는 독자들의 성의 넘친 편지가 나를 또한 즐겁게 하였으며 고무해 주었던 것이다. 소설이 잘 안되어 자칫 실의에 빠지려는 순간에 독자들의 충정 어린 편지를 받아보고 내가 얼마나 커다란 격려를 받았는지, 그리고 그것에 의해 고무되어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었는지를 이 자리에서 고백해 두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그 독자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일일이 답장하지 못한 죄송한 마음을 이 자리를 빌어 밝힘으로써 아울러 용서를 받고자한다.
신문소설은 독자들과의 매일매일의 승부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설은 「게임」이 아니다. 그렇다고 물론 어떤 거룩한 일도 아니다. 독자들과 만나서 인생의 어떤 체험(그것이 설사 그다지 대수로운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을 함께 나누며 그것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나름으로는 그런 생각 밑에서 1년 동안 써왔다. 그 생각은 그리고 독자들로부터 얼마간의 호응도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성과 여부는 독자들 개개인의 마음속에서 정해질 일이지만.
「이화」의 성격과 행동에 대해서는 독자들간에 이견이 많은 모양이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화」는 한 마디로 모성과 처녀성을 동시에 지닌 여자라고. 말하자면 「이화」는 여자들이 갖는 두 개의 서로 상반되는 성격을 한꺼번에 지닌 여자다. 독자들이 여기에서 약간 당황한 모양이다. 모성과 처녀성을 동시에 갖는다는 일은 얼핏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처녀가 어찌 어머니가 될 수 있으며 어머니가 어찌 처녀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내가 오랫동안 꿈꾸어오던 여인상이다. 그리고 그 여인상을 창조하는데 나는 이번에 온갖 힘을 다 쏟았다.
모성의 본질인 연민(또는 사랑)과 처녀성의 본질인 순결을 함께 지닌 여인상을 창조하는데 온갖 노력을 다 하였던 것이다. 그녀의 얼핏 바보같이 보일 수도 있는』여러 남자에게 베푸는 사랑(또는 연민)이 그녀의 모성이라고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순결을 잃지 않는 점이 그녀의 처녀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에 독자들은 동의해 주리라 믿는다.
그밖에 나는 우리가 겪고있는 현실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때때로(비록 단편적인 것이긴 했지만)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하였다. 독자들로 하여금 독자들 자신과 나를 포함한 우리들 모두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잠시 눈길을 돌려 생각해 볼 겨를을 갖게 하기 위해서. 왜냐하면 독자들과 나는 현실이란 배(선)에 함께 탄 같은 운명의 승객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충분한 것이 되지 못했음은 이 자리를 빌어 사과해 둔다.
「이화」의 운명이 불행해질 것을 걱정한 많은 독자들의 편지를 받았을 때나 또한 그녀의 운명을 걱정하였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그녀의 운명을 조작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불행해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어떤 운명 앞에서도 스스로를 불행하게 여기거나 비참하게 느낄 그런 욕심쟁이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다만 자신의 둘레에 있는 불행이나 비참 만을 자신의 그 따뜻한 모성으로 감싸주려 할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처녀성으로서 그것들에 순결하게 맺어질 뿐이다. 그리고 아마 그녀는 독자들의 시선 밖에서 앞으로도 훌륭하게 성장해갈 것이다.
1년 동안 인내심 깊게 읽어준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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