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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는 억제만 할 것인가-「팝·송」의 공과-박용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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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내의 가요의 금지곡 사태에 이른바 「대마초」사건까지 얽혀서 음반 계와 전파「미디어」는 삭풍이 휘몰아치는 격인데다 예윤의 「불건전외국가요백서」라는 거창한 유인물까지 배포되어 움추린 목이 더욱 들어가 버린 것 같다.

<용공적 노래 금지 마땅>
사회의 질서를 문란케 하거나 용공 적인 노래들은 「백서」가 아니라도 응당 일소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팝·송」전체를 「불건전한 노래」의 대명사처럼 막다른골목으로 몰아붙이는 일은 어딘지 어색하고 답답하기까지 하다. 「팝·송」은 이른바 「GI문화」로 미군과 함께 상륙했다. 그래서 국내의 대중가요와는 그 이름부터 구별된다. 이런 대중가요가 일제시대의 영탄조·「트로트」조의 반주와 온존해서 독립국가의 젊은이들에게는 감각적으로 위화감을 주어온데 비해서 「팝·송」의 다부진 「비트」(Beat)와 「리듬」우위의 「바이탤리티」(활력)는 젊은이들의 싱싱한 감각에 「매치」되어 쉽사리 기반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한편 「합·송」은 음악외적인 부착물까지도 껴 묻혀 가지고 들어온 것이 사실이다.

<예외가 본질은 아니다>
여유 있는 나라의 젊은이들이 안일에 겨워 몸부림치는 탈선 적인 생태가 신흥국가의 젊은이들에 걸맞지 않게 전염된 것이다. 환각제의 복용은 그 예의 하나고 그밖에도 지나친 부작용을 생각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음악외적인 부착물을 「팝·송」의 본질과 혼동해서는 젊은이들의 좌절감과 소외감을 오히려 조장시킬 우려가 있을 뿐이고 규제는 어디까지나「여유」가 바람직하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대성 공자가 『시삼백 일언이폐지 사무야』(사무야란 감정이 순수하다는 뜻)라고 격찬한『시경』을 읽어보면 그「여유」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으리라.

<『시경』에도 슬픈 노래>
시삼백 가운데는 개방적인 남녀교합의 노래가 국풍 제1권 첫 머리부터 실렸을 뿐 아니라 싸움터에 끌려 나온 농부의 슬픈 노래·전쟁미망인의 노래·그보다 더한 경우도 풍자시에는 담겨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경』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서기1백년 전부터 전해오는 중국고대의 민요를 공자가 몸소 편찬한 것이다.
규제의 「여유」란 예나 지금이나 국민의 숨통을 터놓는 지혜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규제의「여유」와 더불어 바람직한 것은 여지껏 예술사회에서까지 소외감과 열등 의식을 맛보아온 대중음악의 종사자들에 대한 처우개선이다.

<진흥 없는 억제는 부당>
특히 작사가와 작곡가에 대해서는 대중사회에 주는 영향력에 비해서 문화정책면에서 너무나 방치상대로 두고 규제대상에 오르기 일쑤여서 피해의식만 조장시켜온 것이 아니었을까.
문학예술의 진흥이란 국민대중과 직결되는 대중예술의 건전한 진흥 없인 알찬 성과를 바랄 수 없는 것이고 보면, 그리고 그 진흥은 대중예술의 역군들로 좌우되는 것이고 보면 그들에 대한 문화 정책적인 우대야말로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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