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 포기하면 … 시진핑, 김정은 만나 체제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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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북핵과 6자회담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밝힘에 따라 25일(현지시간) 예정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재개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북한과 핵문제에 대해 이견이 있으나 중국 방식으로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해 6자회담 재개에 적극적 의지를 보였다. 이는 한국과 미국이 요구해온 ‘북한의 진정성 있는 조치’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한·미·중이 ‘선(先)조치 후(後)대화’ 기조 속에서 북한을 공동 압박하는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커졌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24일 “한·미·일의 대화의제는 현장에서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며 “한·중 간의 북핵 논의가 (한·미·일 대화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의 변화된 입장을 손에 쥔 채 미·일을 만나게 됐다. 북핵 문제 논의에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된 것이다. 남북 고위급 회담 재개로 북한과의 직접 대화 채널을 확보한 상황에서 북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과도 이견을 좁혀 가는 모양새다. “북한 핵능력 고도화 차단의 보장이 있다면 대화 재개 관련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도 의미가 작지 않다. 중국이 보장할 경우 6자회담에 보다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한국 정부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때문에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압박하고, 한국은 미국의 완고한 입장을 설득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중국은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 방북(17일) 전에 우리 정부와 사전협의를 진행했고,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나온 북핵 불용의 입장을 북한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이 언급한 ‘북한을 설득하기 위한 중국 측 방식’도 관심의 대상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공개 천명하고 6자회담 테이블에 앉는 대신 시 주석이 중·북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 체제를 인정해주는 방식도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언급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김정은이 권좌에 앉은 지 1년6개월이 다 되도록 아직 중국과 정상회담을 하지 못한 데 대해 조바심이 나 있는 상태지만, 중국은 절대 공짜로 정상회담을 해줄 생각이 없다”며 “북한이 성의 있는 태도 변화를 보인 뒤 시 주석이 김정은을 공식 인정해주는 방식이라면, 북핵 문제에 있어 레버리지를 쥐게 되는 중국도, 중국이라는 방패막이를 더욱 든든하게 만드는 북한도 윈윈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미국이 내걸었던 ‘대화 선결조건’을 얼마나 양보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미국은 6자회담 재개의 조건으로 2011년 북·미가 서명한 2·29 합의 이상의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2·29 합의는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중단 ▶핵·미사일 실험 유예(모라토리엄)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 입북 허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신각수 국립외교원 국제법센터 소장은 “미국은 김정은 집권 초 북핵 해결에 유연한 입장이었지만 북한이 핵실험 등 2·29 합의를 깨면서 대화 자체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라며 “6자회담에 흥미를 갖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일과 선결조건에서 미·중 사이와의 간극을 줄이는 일이 모두 우리나라 몫이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일본도 변수가 될 수 있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은 북핵을 포함해 동북아 안정을 위해 한·미·일 간 공조를 추진하겠지만 일본은 북핵보다 납북자 문제 등에서 실리적 이익을 취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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