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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막 오른 수가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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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의사들의 싸움 기술이 부쩍 늘었다. 시민단체를 끌어들일 줄도 알고 국민이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도 안다. 14년 전 의약분업 때에는 자신들이 왜 ‘공공의 적’으로 몰리는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지금은 다르다. ‘의료영리화 반대’를 내세워 시민단체를 아군으로 만들었고 ‘원격진료 저지’를 앞세워 모래알 같은 개원의들을 파업전선에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2차 휴진을 앞두고 과로에 지친 전공의들이 의기투합했다. 투쟁 강도를 조정하는 데에도 용의주도했다. 개원의 40%가 동참한 1차 휴진은 일종의 맛보기였는데도 정부와의 협상에서 원하는 바를 쟁취했다. 유도로 치면 의사의 한판승이라고 할까.

 애초부터 의협의 과녁은 다른 곳에 맞춰져 있었다. 청와대의 특명인 ‘3대 정책’을 반대할 명분이 작다는 것을 간파한 의협은 수가결정 권한을 가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의 구조개편을 최종 타깃으로 설정했다. 현행 3분의 1에 불과한 의료계 지분을 절반으로 늘려 수가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 표정관리가 필요했다. 3대 정책 중 ‘원격진료’는 의료계가 해결해야 할 미래과제이고, 대형병원에 허용한 ‘영리자회사’는 ‘비급여축소’(간병비, 특진료, 병실료 보험화)에 따른 적자보전책이다. 수익창출의 수단을 얻은 병원협의회가 집단휴진에 동조할 이유는 없었다. 국민의 시선도 결코 곱지 않았다. 4인실을 쓰게 해주고 간병비를 지원한다는 데에 반대할 환자가 있을까. 무의촌 환자가 화상진료를 받는다는 데 누가 이의를 제기하랴. 그런데 왜 이 ‘오만하고 잘 사는 집단’은 잊을 만하면 소란을 피우는가? 그런데 이제 건정심을 장악했으니 건강보험료 인상은 불 보듯 뻔한 것 아닌가?

 그렇다. 수가전쟁은 벌써 시작됐다. 건정심 개편관련법이 국회에 상정되는 그 순간부터 의정 밀실합의에 분노한 시민단체의 총공세와 민생을 앞세운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할 것이다. 여기에 슬그머니 오른 세금에 이미 가슴을 덴 국민들이 의사들을 불신의 늪에 내칠 것이다. 어쩔 것인가? 오늘의 한판승이 또 한 차례의 의료대란을 예고하는 한국의 의료현실을 말이다. 이 시점에서 정부가 솔직해져야 한다. 간병비, 특진료, 병실료를 보험화하면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대거 몰리고 동네의원이 쪼들린다는 것을, 원격진료와 보험확대는 결국 건보료 인상을 초래한다는 것을 말이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지난해 100만원씩 갹출해 적자를 줄이는 대열에 동참했다. 삼성병원은 아예 몇 년간 적자재정을 꾸려 ‘환자행복’ 증진에 매진키로 했다. 원가보전율 80%가 일상화된 압박규제 속에서 정상진료를 향한 몸부림이다. 외국이 성공모델로 삼는다는 한국의료의 내부 사정이 사실은 이렇다. 5년 단임 정권도 환심만 사고 떠나면 그만이다. 동네의원은 더 심각하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 한 해 동안 3400개 동네의원이 폐업했다고 발표했다. 수도권과 강원도 지역 파산신청자 중 의사·한의사·치과의사가 40%를 차지한다. 주당 5.5일, 하루 64명의 환자를 진료해도 그렇다. 의협 조사에 의하면 개업 소요비용은 평균 5억원가량인데 조사대상자 40% 정도가 3억5000만원 정도의 빚에 시달리고 있었다. 월급생활자인 영국 의사와는 달리 민간투자에 공적 가격이 적용된 ‘혼합체제’ 한국의 특이한 모순이다. 의사들은 이 모순을 스스로 연소시켜야 한다. 필자는 의대강의에서 이런 주문을 한다. 개업하려면 동네 소매점 아저씨한테 우선 배우라고. 한국의 수재들에게 성공한 자영업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동네식당도 일년에 20만 개씩 폐업하는데 뭘 그러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생명산업은 다르다. 한국은 6% 건강보험료로 14%를 거두는 독일·프랑스·영국·스웨덴을 따라가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들 국가의 GDP 대비 의료지출비는 8%로 정확히 한국의 두 배다. 그래서 환자의 자부담이 45%로 선진국의 갑절이나 된다. 국민들은 수가와 건보료 인상에 민감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정부가 솔직해져야 한다. 의료복지 공약을 지키려면 수가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호소해야 한다. 수가전쟁은 ‘의사와 국민의 싸움’이 아니라 ‘정권과 유권자의 설전’이고 한국의료계의 발전을 좌우하는 미래대응적, 범국민적 협상이어야 한다.

 의협은 바로 이 점에서 뼈아픈 실수를 저질렀다. 협상테이블에 왜 시민을 초청하지 않았는가? 수가인상의 불가피성을 호소함과 동시에 환자의 자부담을 줄여 의료공공성에 공헌하겠다는 생명지킴이의 소명의식을 보여줬어야 했다. 오늘의 한판승은 불신(不信)의 벽 앞에 역전패를 자초할지 모른다. 승전가를 부르는 의사들에게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