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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무료병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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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옛 선비들은 빈곤을 수치스러운 일로 생각지는 않았다. 요즘의 감각으로는 어줍은 생각 같지만, 청렴하기로 치면 그 심경은 매양 한가지일 것 같다.
하지만 그 어느 편이든 가난이 고통인 것만은 사실이다. 더구나 오늘의 시속에선 불변과 적막감은 더 이를 데 없다. 병이 나도 어디 마음이나마 기댈 데가 없다. 의탁할 만한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번거로움하며, 수속과 절차란 당해본 사람이나 아는 일이다.
병원의 창구에서 흔히 보는 광경은 진료에 앞서 요금을 먼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어느 격사의 수필에서 진찰시간의 절반은 병 이외의 상담이라는 이야기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 일이 있었다. 필경은 비용에 관한 응답일 것이다.
요즘은 청진기만의 전단시대는 지나갔다. 각종 검사와 「엑스레이」촬영은 거의 필수적인 것 같다. 따라서 환자들은 영문도 알 수 없는 비용들을 엄청나게 부담해야 한다. 실로 가난한 사람들에겐 더없이 불편하고 못 견딜 일이다.
미국에서 위경련으로 고생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종합병원에 입원을 했더니「엑스레이」를 무려 번이나 촬영하더라는 것이다.
10일간의 검진만으로 그 비용은 무려 3천「달러」를 지불했다고 한다.
물론 생명을 존중하는 종합진찰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당하는 편에서는 여간한 부담이 아니다.
가난하면 친구가 적다는 속세도 있다. 하물며「병든 빈자」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빈곤을 없애는 것이 어느 나라나 이상의 과제이지만, 그 빈곤의 현실을 따듯이 돌보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병과 빈곤의 관계는 마치 거울과 빛의 관계와 같다. 병의 온상은 가난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명병도 적지 않지만 가난에서 오는 병은 거의 필연적이다. 그럴수록 가까워야 할 병원이 가난한 사람에게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대한구국선교원이란 한 사회단체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야간무료병원을 설립한 것은 엄동의 훈풍과도 같은 소식이다. 춥고 어두운 밤에 병고로 신음하는 빈자들을 따뜻이 맞아줄 수 있는 병원이 우리사회의 일각에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마음의 위로를 준다.
바라기는 이런 운동이 누구만의「아이디어」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분위기로 성숙했으면 좋겠다. 가난은 밉더라도 그 사람까지 미워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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