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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에 '객주문학관'… 문학·미술·사진 배움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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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소설가 김주영씨가 25일 문을 여는 객주문학관 개관에 앞서 22일 고향 청송으로 이사했다. 작가는 여기 머물며 후배들에게 문학과 예술을 강의할 계획이다. 이곳이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씨가 폐교됐던 진보제일고를 리모델링한 객주문학관 앞에 서 있다. [사진 청송군]

“저 개인의 문학적 성취를 알리기보다 지리적·문화적으로 오지인 이곳에 문화공간이 세워진 게 더 다행스런 일입니다.”

 대하소설 『객주』의 작가 김주영(75)씨는 고향 청송에 들어선 ‘객주문학관’을 문화 낙후지역에 사는 후배들이 문학·예술의 양분을 섭취할 공간으로 받아들였다.

 작가는 22일 경북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 새로 조성된 객주문학관 안 작가실로 이사하고 온종일 짐 정리를 했다. 25일 객주문학관 준공식을 앞두고 40여 년 만의 귀향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짐은 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모두 5000권쯤 된다”며 “고려와 조선시대 민속 등을 다룬 역사서와 논문 등이 많다”고 설명했다. 요즘 들어 역사서를 읽는 데 재미를 들여 계속 읽기 위해서다.

 청송에는 혼자 내려왔다. 작가는 “이제 혼자 지내는 게 편하다”며 식사는 아침은 안 먹고 점심은 대충, 저녁을 많이 먹는 편이어서 혼자 해결할 계획임을 내비쳤다.

 그는 “앞으로 청송에는 한 달에 열흘이나 보름간 머물 예정”이라고 밝혔다. 머무는 동안 의성·예천·안동·영양·봉화·영덕 등 이곳까지 1시간이면 올 수 있는 문학이나 미술·사진에 관심 있는 후배들에게 전문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자신은 수시로 문학을 특강하고, 소설가로 활동하며 인연을 맺은 이 분야 전문가를 동원해 고향 후배들이 돈을 좀 덜 들이고 문학·미술·사진을 배우는 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히 사진은 『객주』를 집필하는 동안 전국의 장터를 두루 찍어 사진전을 열었을 만큼 그가 문학 다음으로 애착을 지닌 분야다. 작가는 “여기 산골은 문화적 욕구가 있어도 접촉할 기회가 적다”며 “객주문학관을 지역의 주된 문화공간으로 만들었으면 한다”고 의욕을 보였다. 중소기업청이 상인정신을 고취시키는 연수 장소로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객주문학관에 전시된 보부상 자료 때문이다. 그는 “고향에 기여할 바를 찾다 보면 수명도 연장되지 않겠느냐”며 “잘하면 혼자 있으면서 연애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길 테고…”라며 농담도 했다.

 객주문학관은 착공 15개월 만에 완공됐다. 청송군이 국비 등 73억원을 들여 폐교된 진보제일고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문학관은 작가 아닌 작품의 이름을 따 보부상에 관한 자료도 함께 정리한 게 특징이다.

 2층 전시실에는 객주를 신문에 연재할 당시의 육필 노트가 펼쳐져 있다. 깨알처럼 작은 글씨로 대학 노트 전면에 빽빽이 적혀 있다. 작가는 어휘 선택이 치밀했다. 말(馬) 하나만 해도 수십 가지로 구분했다. ‘좌마(坐馬)는 벼슬아치가 타는 관마(官馬), 보마(寶馬)는 임금이 타던 말, 타마는 짐 싣는 말 …’ 등등. 작가는 글을 쓰면서 때로 어떤 사물을 묘사할 딱 맞는 단어 하나를 찾아 밤을 꼬박 새며 국어사전을 뒤졌다. 그러다 새벽녘에 이거다 싶은 단어를 찾아내곤 혼자 만족해 실실 웃으며 동네를 쏘다녔다고 한다.

 그가 작가가 되기를 결심하고 안동엽연초생산조합의 주사직을 그만두겠다고 1968년 작성한 사직원도 보인다. 또 취미로 수집했다는 새 깃이 달린 펜 등 수십 가지 철필도 진열돼 있다. 객주의 무대인 주막 등 장터의 모습과 보부상의 역사도 정리돼 있다. 널찍한 일부 교실은 소설도서관과 체험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10권으로 출간된 객주는 19세기 말 보부상의 애환을 담아낸 역사소설이다. 작가의 발품을 팔아 장터의 토속말을 생생하게 살린 게 특징이다.

청송=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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