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처벌 … 간지럽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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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에게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보험금 지급을 미뤘거나, 보험상품을 엉터리로 파는 금융회사들에 대한 금융당국의 솜방망이 제재가 이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소비자 보호를 내세우고 있지만, 각종 처벌 규정이 시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빅3’ 생명보험사 중 한 곳인 교보생명은 최대 175일까지 보험금 지급을 지연하면서 그 사유와 지급 예정일 등을 통지하지 않았다. 2012년 1년 동안 1만6975건이다. 이 중 98%는 별도의 심사 없이 3일 안에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었다. 보험금을 제때 지급하고 지연이 될 때는 그 이유를 고객에게 알리는 것은 보험사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보험사는 기초서류에 기재된 사항을 준수하여야 한다’는 보험업법 127조의3을 위반하게 된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의 제재는 직원 3명에게 주의를 내리는 것에 그쳤다. 주의는 임직원에 대한 제재 중 가장 낮은 것이다. 보험금 지급 지연 안내를 하지 않은 우리아비바생명(249건)과 동양생명(15건)도 각각 직원 2명과 1명이 주의를 받았을 뿐이다.

이러한 위반사항에 대해 보험업법 등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부과 대상이 이사·감사·지배인 등으로 한정돼 있다. 보험사 자체에는 과태료를 부과할 근거가 없다. 신기철 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교수는 “보험은 상품 구조가 복잡해 소비자가 약자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 금융회사가 소비자와의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강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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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회사의 대리점 자격으로 보험 을 판매하는 카드사에 대한 제재도 미약하다. 올 들어 보험 불완전판매로 제재를 받은 곳은 신한·비씨·국민·롯데·하나SK·현대카드 등 6곳이다. 중도 해지에 따른 손실 가능성은 설명하지 않고 은행 이자보다 월등히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식으로 엉터리 설명을 했다. 이들 6개사는 이런 판매로 130억원이 넘는 보험료 수입(계약 첫 달 기준)을 올렸다. 과태료는 각각 1000만원에 그쳤다.

 보험업법에는 보험사가 고객에게 상품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판매하면 보험료의 20%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카드사와 같은 보험 대리점에 대한 과징금 규정은 없다. 과태료 상한도 보험사(5000만원)와 달리 1000만원에 불과하다. 원래 영세한 보험대리점이나 설계사에게 과도한 과태료나 과징금을 부과하기 어렵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매출 규모가 큰 카드회사를 보험설계사와 같이 취급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카드사의 보험 판매 규모는 1조7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카드사들은 보험료 수입의 2~10%의 수수료를 챙긴다. 카드회사 입장에서는 보험상품을 제대로 팔지 않다가 적발돼도 과태료로 1000만원만 내면 되기 때문에 불완전판매가 근절되기 어렵다. 2012년(회계연도) 카드사와 홈쇼핑을 통한 보험상품의 불완전 판매 비율은 10%를 넘는다. 생명보험사(3.8%)와 손해보험사(2.1%)가 직접 팔 때보다 훨씬 높다.

  솜방망이 제재 문제는 국민·농협·롯데카드의 정보 유출 사태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카드사에 대한 제재는 각각 과태료 600만원과 영업정지 3개월이었다. 신용정보법과 시행령상 과태료 상한이 600만원이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가 뒤늦게 처벌 조항을 강화하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 관련 법령은 개정되지 않았다.

 이경주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금융소비자학회장)는 “그동안 금융당국이 금융회사의 건전성 감독에 주력하다 보니 소비자 보호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며 “불법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소비자 보호 관련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과태료와 과징금=행정기관이 법령을 위반한 곳에 부과하는 금전적인 제재다. 과태료가 위반 행위 자체를 제재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과징금은 위반 행위로 얻은 경제적 이득을 환수하는 차원에서 부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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