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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직한 아내, 귀여운 남편 … 학력·소득·직업 '여성 상위' 많더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 지난해 결혼한 장모(35)씨 부부는 다섯 살 차이 연상·연하 커플이다. 장씨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대학원을 다니던 중, 전 직장의 상사였던 아내와 가까워졌다. 지금은 공공기관에 취직했지만, 연애를 시작했던 2012년만 해도 일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했던 상황. 그래서 더 지금의 아내에게 끌렸다고 한다. “내 한 몸 책임지기도 힘든데 결혼해 누군가를 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컸어요. 아내는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 처음부터 편하게 만날 수 있었죠.” 아내는 10여 년의 회사 생활로 수도권에 아파트도 장만해 놓은 터였다. 꾸준히 운동하고 관리한 덕에 외모나 말투에서 나이 든 티가 나지 않았다. 장씨는 “말이 잘 통하고 외모가 앳돼서 금세 여자로 느껴졌다. 어린 여자들과 달리 내게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의지하려고 하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장씨의 아내 정모(40)씨는 남편의 가장 큰 매력으로 ‘귀여움’을 꼽는다. 직장 생활 15년 차. 연봉은 남편보다 2000만원가량 많고 모아둔 재산도 꽤 된다. 장씨를 만나기 전엔 ‘꼭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결혼하고 싶었죠. 하지만 경제적으로 아쉬울 게 없는데 굳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 ‘해야 하니까 하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옛 직장 후배 장씨가 남자로 느껴졌다. 사회 생활을 덜 해서 순수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 정도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여자들 대부분이 자기 주장이 강해지거든요. 또래 남자들과 만나면 싸우게 되는 일이 많아요.” 그는 “주변을 둘러보면 독립적이고 주장이 분명한 연상녀와 다소 부드러운 성격의 연하남이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기존의 성 역할과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늘어나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급증하는 연상녀·연하남 커플. 배경엔 매력 있는 남성을 찾는 골드미스와 경제적 부담을 덜고 싶은 연하남 간의 합의가 있었다. 통계청의 마이크로데이터로 1997년 이후 연상·연하 커플의 학력·직업별 분포를 분석한 결과다.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많이 배우고 ▶전문직·관리자같이 소득이 높거나 ▶서비스·판매직처럼 외모를 관리해야 하는 대면 업무 종사자에게서 뚜렷하게 연하남 결혼이 늘었다. 남성은 무직·학생이 연상녀와 결혼을 가장 많이 해 대조적이다.

연상녀들, 직업상 외모 잘 가꿔 ‘경쟁력’
2012년 결혼한 전국의 연상·연하 커플은 2만6552쌍. 그중 7637쌍(19.2%)은 여성의 학력이 남성보다 높았다. 같은 해 결혼한 전체 부부에서 여성 학력이 높은 경우가 14.9%라는 걸 감안하면 뚜렷한 차이다. 여성은 대학원을 나왔지만 남성은 대학만 나온 경우가 2018쌍, 남성은 고졸이지만 여성은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온 경우가 각각 4952쌍, 189쌍에 달했다. 이런 추세는 급작스러운 변화다. 5년 전인 2007년만 해도 여성의 학력이 남성보다 높은 경우는 12.6%에 불과했다. 여성의 학력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더 이상 “남자가 그래도 여자보다는 많이 배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약화된 것이다.

여성의 경우 고졸(17.4%)·대졸(15.4)에서 연하남과의 결혼이 많았지만 남성은 고졸(18.3%)과 중졸(17.4%)이 연상녀와 결혼을 많이 했다. 대졸 여성의 연하남 결혼 비중은 1997년 9.4%에서 2012년 17.4%로 늘었지만, 대졸 남성의 연상녀 결혼 비중은 8.1%에서 14.7%로 느는 데 그쳤다.

직업적으로도 연상·연하 커플에선 여성 상위 추세가 뚜렷하다. 직업별로 연하남과 결혼한 여성의 비중을 따져봤더니 서비스·판매직 종사자가 가장 많았다. 2012년 결혼한 서비스·판매직·종사자 2만7389명 중 4981명(18.2%)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남자와 결혼했다. 스튜어디스나 헤어 디자이너 같은 대면 업무를 하는 이들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이명길 연애코치는 “연상녀와 결혼하는 남성들이 여성의 외모를 따지지 않는 건 전혀 아니다. 여성들의 외모 투자가 늘어나면서 30대 여성도 20대 못지않은 매력을 지닌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그는 “서비스직처럼 대면 업무를 하는 여성들일수록 외모 관리가 잘 된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보다 더 눈에 띄는 건 고소득·전문직 계통이다. 서비스·판매직 다음으로 연하남 선택 비중이 높은 직종은 관리자(17.2%)다. 국회의원이나 기업 고위직 같은 고소득 직종이 포함된다. 직업을 알 수 없는 ‘미상’을 제외하면 다음으로는 전문직·관련 종사자(15.7%)도 연하남과 많이 결혼했다. 이들 직종은 동갑과의 결혼 비중도 여타 직종에 비해 1~2%포인트 높았다. 한마디로 능력 있는 여성들 사이에서 나이가 같거나 적은 남성과 결혼하는 추세가 뚜렷한 셈이다.

이에 반해 남성은 직업이 뚜렷하지 않거나(직업 미상 21.7%) 소득이 없는(무직·가사·학생 21.2%) 경우에 연상녀와 결혼한 비중이 전체 평균(15.6%)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문직(15.2%)이나 관리자급(13.4%)이 연상녀와 결혼한 비중은 전체 평균 이하였다.

“취업난이 진화심리학 뒤집어”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를 두고 “ABCD 이론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정리한다. ABCD 이론은 왜 학력과 직업이 괜찮은 골드미스가 짝을 찾지 못하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나온 이론이다. “남성이 보통 자신보다 학력·직업·재산 등의 조건이 조금 낮은 여성과 결혼하던 기존의 결혼관 때문에 A급 남성은 B급 여성과, B급 남성은 C급 여성과 결혼한다. 이 때문에 결혼 시장에는 A급 여성과 D급 남성만 남는다”는 게 골자다. 전광희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의 교육 수준과 경제적 지위가 올라가면서 이런 식으로는 점점 짝을 찾지 못하는 남녀가 늘 수밖에 없으니 이들이 발상을 전환한 걸로 보인다”며 “독신과 만혼이 늘어나는 주요 원인인 기존 결혼관이 깨지기 시작한 건 반가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전통 결혼관에서 남성은 경제력, 여성은 외모를 주요 무기로 내세웠다면 연상·연하 커플 사이에선 여성의 경제력과 남성의 매력이 주요 조건이다. 네 살 많은 변호사 아내와 사는 김모(36)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대학원을 다니다 아내를 만났다. “꼭 경제적으로 기대고 싶었다기보다 커리어우먼의 강하고 깔끔한 이미지가 멋있어 보였다”고 말한다. 그는 “주변을 보면 갈수록 나이 어린 여성보다 나이가 많더라도 독립적이고 주장이 있는 여성을 선호하는 경우가 느는 것 같다”며 “나도 내가 관계를 주도하기보다 결단력 있는 여성과 있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점점 더 남성의 외모를 중시한다. 세 살 어린 남성과 결혼한 임모(29)씨. 같은 과 후배인 남편은 중소기업에, 자신은 외국계 기업에 다닌다. 본인이 연봉이 많고 회사도 더 안정적이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저도 꽤 벌고 맞벌이를 하니까 생활에 지장이 없거든요. 그것보다는 제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인가가 더 중요한 거 같아요. 친구들이 대기업에 다니는 남자친구를 데려와도 나이 많고 외모가 아저씨 같으면 ‘왜 저런 사람을 사귀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확실히 ‘남자 얼굴 뜯어먹고 사느냐’는 엄마 세대와 우리는 가치관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존의 진화심리학 이론이 뒤집히고 있다”고 말한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존에 유리하도록 본성이 변해왔다는 학설이다. 남자가 사냥·수렵을 해 여성을 부양해 온 역사 때문에 여성은 본능적으로 능력 있는 남성을 찾고, 그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외모를 가꾸려 한다는 식이다. 곽 교수는 “어려서부터 과잉 보호를 받으며 자란 요즘 남성들도 여성에게 주도권을 주는 걸 편안하게 느낀다”며 “취업난 속에서 경제적 자신감이 떨어진 것도 한 원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규원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동물의 세계를 봐도 권력을 쥔 쪽이 배우자의 생김새를 따져 짝을 고르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라며 “최근 경제력 등 권력을 쥐게 된 여성이 늘면서 연애·결혼관이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미진 기자, 이지훈·임지수 인턴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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