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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박사」는 학적양심에 맡길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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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의학은 과학화돼야 한다>
근래 서구에서 한의학과 침구가 인식되어 가고 있다고 하여 현대의학이 한의학으로 대치하게 된다는 극단론자가 있다면 크게 잘못이다.
이와 반대로 한의학은 비과학적인 전근대적 유물이기 때문에 빨리 없어져야 한다는 극단론자는 더욱 위험하다.
현대의학의 놀라운 발전은 드디어 한의학의 미 과학적인 가설체계를 과학화함으로써 보다 완벽한 의학으로 도약하려는 단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이런 뜻에서 이른바「동서의학」의 접근과 제휴가 오늘날처럼 아쉬운 때는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자폐성을 탈각하고 생명현상접근 방법론의 상호장단점을 허심탄회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의학은 과학화되어야 하고 현대의학은 철학 화 될 필요가 있다.
버트런드·러셀 경이 철학의 직관과 과학의 실증의 상호의존성을 논했듯이 생명현상처럼 복잡한 다 변수 계의 요인분석에 있어서는 때로는 거시저인 패턴 인식방법이 우위일수도 있는 것이다.

<아쉬운 동서의학의 제휴>
우리나라는 한의학연구의 세계적 중심이 될 몇 가지 여건을 지니고 있다. ①우리의 의료구조가 현대의학과 한의학의 이중구조라는 점 ②한의사제도가 있고 한 의과대학이 존재한다는 사실 ③연구 및 교육을 위한 한의학 종합병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 ④우리의 한의학의 연원을 중국에 두고 있기는 하나 우리의 독창성으로 민족의학으로 발전시켜 온 전통을 지니고 있다는 점.
우리 스스로 한의학을 연구할 체제를 갖추지 못하면 한의학을 언젠가는 서양에서 역수입해야 하게 될 우려도 있다.
한의학에서 「수명」한다는「상약」지 개념을 우리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무시하고 있는 동안 서구의 인삼연구로 「비 특이성 저항력증대」에 의한 정상화 작용을 한다는 획기적인 개념이 정립되자 인삼연구 붐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은 무엇인가.

<학위…실증적 연구의 촉진제>
의학에 있어서 박사학위제도가 기초의학의 발전을 촉구하는 이점도 있는 반면에 학위를 임상의 권위와 결부시킴으로써 생기는 폐해도 적지 않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몰 논리적인 진료실천만을 한의학의 전부라고 착각하기 쉬운 풍토가운데서 학위제도가 그런 방향으로 오용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며 모름지기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실증적 연구의 촉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노자의 말에『지자불박, 박자부지』라고 한 것은 진정한 학자라는 것은 심오하게 아는 사람이지 넓게 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같은 글자를 쓰고 있다고 하여 박자와 박사를 혼동하여서는 아니 된다. 박사는 그 실은「박」자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 심오하다는 뜻의 글자가 사용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박사라는 학위를 가장 높은 석학에게 주어지는 칭호라고 인식되던 때도 있었지만 오늘날은 소정의 기초훈련과 실력을 지닌 연구자에게 수여되는 자격이라고 보고 있다.
한 의과 대학이 있는 이상 그러한 연구자가 있을 것이며 또한 있어야 할 것이며 그러한 연구자들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무슨 제도 건 시작이 힘들어>
무슨 제도이건 간에 처음 시작이 힘들다. 그러나 힘들다고 하여 만들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제도가 생김으로써 발전이 촉구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초창기의 박사는 일부러 만들어 내지 않고는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선진국의 학위제도의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원자탄이 없는 나라라고 하여 육군대장이 없으란 법은 없다.
기천 년 전의 원전을 조술 하고 실천하는 것만이 한의학의 법 통일이라고 하는 구 각 가운데서 현대적 감각으로 한의학을 연구한다는 의도는 지극히 높이 평가되어야 하며 죽은 한의학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길이기도 하다. 학문연구의 생명은 독립성과 자율성에 있는 만큼 한의학박사는 한 의과 대학당국의 학적 양심에 맡길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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