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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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가만히 있어도 어깨가 움츠려진다.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것을 보면 대단히 추운 날씨인가보다.
24일 아침 서울의 수은주는 영하 6도까지 내려갔다. 관상 대 얘기로는 날씨는 2, 3일 후부터야 평년기온을 되찾겠다 한다.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겨울 한복판에도 이렇게까지 떨리지는 않는다. 너무 갑작스레 다가온 추위에 몸이 미처 익숙지 못한 탓인가 보다.
갑자기 추워지면 피부의 혈관이 수축한다. 이 때문에 심장에서 혈관으로 피를 보낼 때의 혈압이 높아져서 뇌일혈환자가 늘어난다.
또 급격한 추위는 스트레스가 되어 두통·권태로움·위장장애 등 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 뿐이 아니다. 습진·천식 등의 알레르기성 질환이며 류머티스·신경통 등도 도진다.
이래저래 추위는 결코 반가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추워도 소주 한잔이나마 곁들여 불고기라도 배불리 먹고 나면 추위는 별로 타지 않는다. 몸도 떨지 않는다. 그러니까 잔뜩 몸을 움츠리고 총총걸음으로 도심을 걷는 통근자들은 모두 빈속이라서 더욱 추위를 탔을까.
물론 춥지 않아도 몸을 떨게 되는 경우도 있다.
유난히 몸을 흔들거나 다리를 까부는 사람도 있다. 남 보기에도 궁상맞지만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이다.
정신과의의 말로는 입시 전이나 가정에 트러블이 있을 때, 회사에 지각할 듯 할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불안감을 제거시키려 한다. 이래서 몸을 까불게 된다. 이것이 잦아지면 어느 사이엔 가 버릇이 되고 만다.
외국인들에게는 몸을 까부는 버릇이 없다. 어릴 때부터의 가정교육 탓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아무래도 우리네보다 욕구불만이 적은 탓인 것만 같다.
적어도 욕구불만을 발산시킬 수 있는 길이 우리네보다는 많다.
어쨌든 우리는 갑작스런 추위를 만나면 모든 욕구불만이 안으로 얼어붙기만 한다. 자연 몸을 까부는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몸이 자꾸만 떨리기만 한다. 요행 김장은 마쳤지만, 기나긴 겨울동안의 연료비도 큰 걱정거리다.
보일러를 쓰자니 기름 값이 8·4% 올랐다. 보일러를 돌리자면 전기를 써야 한다. 그것도 10% 올랐다.
연탄도 품질이 떨어져 하루 두 번씩 갈던 것을 이제는 서너 번 갈아야 한다.
그리고 보면 거리의 사람들이 몸을 떠는 것은 꼭 추워서만이 아니라 월동걱정에 대한 반사작용이나 다름없다.
의사의 말로는 몸을 아무리 까불어도 크게 신경을 쓸 일이 못된다고 한다. 오히려 몸을 까분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게 될 때 전형적인 노이로제의 징후가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몸이 떨려도 모든 것을 그저 추위 탓으로만 돌리는 게 건강을 위해서도 좋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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