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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에 시행착오 없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인위적인 도태는 무리>
「세대교체」란 말은 이제 단순한 개념상의 용어가 아니라 우리사회 구석구석에까지 깊이 뿌리를 내려 노년의 세대에겐 상당한 부담을 주는 세태가 된 것 같다.
그러나 1961년 이후 나이 먹은 사람들을 인위적으로 도태시킴으로써 결국 많은 인재들을 폐물 화하고 만 시행착오를 빚었다.
관청이나 기업체 채용시험에서의 연령제한은 이미 상식화된 일이지만 세대교체의 여신은 가정에까지 밀려와 전통적 윤리관의 하나인 경로사상마저 뒤 흔들어 놓았다.
한때는 텔리비젼·전화·승용차 등이 없으면 꺼리던 가정부들조차 요사이는 노인이 있는 집을 제일 꺼린다고 한다.
최근 번창한 핵가족 제만 해도 집밖 사정보다는 「집안 늙은이 문제」가 작용한 경우들이 많다. 이제 50대 이상의 육체연령 자는 자녀들에게서는 물론 가정부들한테까지 밀려나고 말았다. 세대교체가 높이 제창되던 당시부터 나는 그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물론 당시 50대 들은 나 자신이『50세 이상은 물러나야 한다』는 물리적인 세대교체의 굴레를 쓰게 되는 데 대한 반감도 없지 않았다.

<원숙한 경험은 큰 재산>
50대 노장들은 인생의 멋도 좀 알고 경험과 경륜도 있어 좀더 진취할 수 있다고 생각도 했지만 결국 찬바람을 맞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이 당했다고 해서 세대교체를 끝내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과격하게는 세대교체를 일종의 생매장인 고려장에 비유하기도 했지만 15년 동안을 지켜본 결과는 과히 내 생각이 그릇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과 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인위적인 세대교체란 어느 사전·어느 나라 사회에도 없는 줄 안다. 그 실천과정에서 보여준 우리의 세대교체는 30대가 넘은 유흥가의 여성이 퇴역하는 일이나, 운동선수가 육체적인 기력이 다해 은퇴하는 것과 같은 일종의 자연도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모두가 무조건 젊어야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군대사회에서나 적용될 수 있다. 오랜 경험에서 얻은 경륜이나 원숙 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귀중한 재산임은 역사의 천리인 것이다.

<생존권 빼앗은「폐인취급」>
『아들이 어머니보다 지식은 우월할 수 있지만 지혜는 우월할 수 없다』는 서양격언이나 『시어머니가 없으면 집안이 잘될 것 같아도 시어머니가 있어야 가정이 된다』는 얘기는 바로 인간의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잘 드러낸 말들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사회는 40세만 넘으면 아무 데도 이력서를 낼수 없는 사회, 폐인이 되고 마는 사회가 됐다.
세대교체는 인간의 연령을 빼앗아 갔을 뿐만 아니라 광의의 생존권까지를 빼앗은 결과를 낳고 말았다.
세기의 석학 고 토인비 교수는『일만 있으면 살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노망·쇠약한 것도 아닌데 세대교체에 밀려 물러난, 할 일이 없는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남은 3분의1이상의 생을 어떻게 살란 말인가.
그렇다고 훌륭한 사회보장제도가 없는 현실을 원망하는 것만은 아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최근 노인들을 잘 대접하자는 신풍 운동이 일고 있고 80노인이 회사사장을 하는 예도 많다고 한다.
심지어는 가장 질서를 유지해야 할 정계에서까지 세대교체의 여풍 인지는 몰라도 40대 기수의 돌풍이 몰아쳤었다. 더우이 세대교체를 부르짖던 사람들이 이제 교체를 당해야 할 연령이 됐다는 사실은 인생무상에 앞서 아이러니컬하기도 하다.

<재론되어야 할 세대문제>
5·16이라는 큰 변혁의 힘과 함께 뿌리가 깊이 내려진 세대교체의 시행착오들을 바로잡기에는 변혁에 못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아직까지 별 저항이 없던 세대교체문제는 이제부터라도 다시 한번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다.
한동안 정론행세를 해 온 세대교체의 공해를 받은 세대들이 뒤늦게나마 제기하는 이같은 반론은 이제 오늘의「정론」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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