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련해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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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시대의 변천은 전국학련에도 격심한 진통을 몰고왔다.
학련이 더 이장 존재할 것이냐 해체할 것이냐가 심각히 논의됐다.
본래 학련은 45년12월 「모스크바」에서 「조선탁치 5년」을 결정했을 때 「탁치분쇄!」 「조국의 즉시 자주독립요구」를 들고 출범했다. 그후 46년 1월엔 「반탁학련」으로 진용을 갖추고 7월엔 명실공히 백만학도의 집결체로 진용을 강화했다.
그러나 48년8월 정부가 수립되자 정부는 모든 학생조직을 폐합, 학도호국단으로 일원화작업을 서둘렀다.
우리는 즉각 반대했다.
첫째 학생이면 좌우할 것 없이 누구나 단원이 되는 학도호국단은 질을 떠나 양만을 따지는 획일주의라는 점, 둘째 정부의 임명식인 학도호국단은 관제단체로서 학생단체의 생명인 자율성을 해친다는 점, 세째 정부가 수립되었다해도 좌익학생이나 활동은 없어진게 아니므로 전국학련은 계속 존재해야 된다는 점을 역설했다.
기관지인 「학생보」(주간)를 통해 우리의 정당성을 주창하고 요소 요소에 벽보를 붙여 정부처사를 반박했다.
벽보중엔 『안호상 장관 물러가라』는 내용도 있었다. 국회도 학도호국단은 「히틀러」의 「유겐트」와 같은 전체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하여 반대론이 비등하고 당시 주한 미대사 「무초」와 군사고문 「로바르트」대장도 가세했다.
특히 한민당은 『건국의 공적으로 말하면 전국학련은 기린각에 영원히 새겨두어야할 터인데 이를 해체하려함은 눈물겨운 애국투쟁을 헛되이 하는것』이라고 통박했다. 그러나 정부측을 대표한 안호상문교장관은 일민주의를 내세워 학도호국단을 강력히 밀고 나갔다. 신생정부가 수립되었으니 너나없이 「한백성 한 운명」이 되어 건국대열에 참여하자는 것이 일민주의의 요체.
급기야 49년4월엔 전국 남녀학생을 총망라하는 「대한민국학도호국단」을 창단, 총재에 이승만대통령, 단장에 안호상장관이 취임했다.
그에 앞서 정부는 해방후부터 임립한 각종 청년단체를 「대한청년단」으로 묶어 단장에 신성모씨(뒤에 국방장관)를 앉혔다.
연일 거리엔 학도호국단의 행렬이 넘쳤다. 그때마다 일부 과격한 학련맹원은 행렬의 선두에 가 호국단의 기를 뺏었다. 전국학련은 해산을 보류하라고 은근히 각 지부에 종용했다.
정부도 신중히 다루는 터였다. 어느날 나는 오홍석·박철용·손영섭·고병현등과 함께 안문교를 장관실로 찾아갔다.
『학련이 유일무이한 애국단체라고 직접 지도할때는 언제고 해체할 때는 언제입니까. 정부에 들어가면 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라고 항의했다.
안박사는 일민주의를 역설하며 시대의 흐름에 따르라고 했다. 학련이 건국에 씨를 뿌렸다면 호국단은 그 꽃이요 열매라고 말했다.
동행한 오군이 『안장관은 좌익맹휴만 겁내지 우익맹휴는 무서워하지 않으십니까. 정히 해체를 강행하면 전국에 지령을 내려 백만학도가 「스트라이크」에 들어가겠읍니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날부터 양근춘·유구환·장갑진·김수용동은 매일 번갈아 장관실을 드나들며 해체 반대를 역설했다.
특히 석천성·홍관식·정진방·경필호등은 명륜동 안박사 사택까지 찾아다녔다.
이때 제일 곤란한 것은 안박사도 안박사려니와 그의 비서인 윤원구동지.
윤동지는 반탁초창기에 나의 1급 참모로서 대공투쟁에 눈부신 공적을 쌓았다.
그러던 그가 안박사의 비서가 되어있었다.
매일같이 우리가 찾아가 비서실이며 장관실을 점거하고 있으니 그는 문자그대로 몸둘바를 몰랐다.
그러나 학련해체 문제는 안박사 개인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곧 국가의 정책이오 변혁을 추구하는 역사의 흐름이었다.
나는 제5차 전국대의원대회를 11월20일에 소집했다.
당시 전국 지부연맹 수는 1백26개, 대의원 수는 중앙상무집행위원 75명, 일반대의원5백66명을 합쳐 6백41명이었다.
첫날인 20일은 각 지부의 경과 보고로 끝났다.
나는 그날밤 본부임원과 함께 지방대의원의 숙소를 순방했다.
그때도 전국학련대 의원대회가 있으면 지금 정당의 전당대회처럼 그 인근의 여관은 초만원을 이루었다.
영남「팀」은 주로 관철동일대, 호남「팀」은 악원동일대, 기타「팀」은 청진동일대에 진을 쳤다.
모두 한잔의 소주를 들이켜며 서로의 회포를 풀고있었다.
그런데 관철동여관에서의 일.
문을 나서는 나에게 포항학련 위원장 장동식이 번쩍 단도를 뽑아 들이댔다. 『위원장! 학련 해체하면 알지?』하며 다가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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