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깨고 정상 굳힌 「마물」-「유럽」에서 본 지휘자 「프레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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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신이 어떻게 박혔길래 「베토벤」을 「셔츠」바람으로 지휘한단 말이냐!』 「런던」의 한 음악비평가는 BBC-TV에 「셔츠」바람으로 나와 「런던·심퍼니」의 「바통」을 뒤흔든 「안드레·프레빈」을 놓고 조간지 비평난에 이렇게 호통을 쳤다. 한 2년 전 BBC가 주말「프로」 『「프레빈」과 한 저녁을』의 첫 선을 뵈었던 때의 일이다.
이 「사건」(?)이 있은 다음 「프레빈」은 주말마다 자그마치 5백만명의 영국인들을 TV앞에 묶어놓게 됐고, 그의 「샤쓰」바람을 기세 좋게 나무랐던 비평가는 쑥스러웠던지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물론 이런 「프레빈」이나 LSO를 놓고 지금도 새침 떠는 일부의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조차 한가지 사실만은 누구도 어쩔 수 없이 인정을 한 듯 하다. 그것은 「프레빈」과 LSO의 음악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애청되는 악단의 정상을 이루고있다는 것이다.
「재즈」음악, 더욱이 영화음악을 한 사람이 「클래식」음악계에 발을 들여 넣으려는 것은 『살인범이 천당에 가려는 것과 같다』는 것이 당시 편견에 싸인 미국악단 이었었다. 그러나 음악의 세계에서도 구경문제는 음악이 먼저다.
그에게 결정적 순간이 온 것은 1965년 「쇼스타코비치」·「차이코프스키」작품을 녹음하는 「런던·심퍼니」를 지휘하러 영국에 건너왔을 때.
그때도 LSO란 흔히 『단원들의 관록이 지휘자를 잡아먹는 악단』이었었다.
그러나 「프레빈」은 「런던」에 와서 LSO를 거꾸로 『잡아먹었다.』 이런 표현이 과장일 게 없다는 것은 LSO가 3년 후에 그를 상임수석지휘자로 모셔갔고 계약기간도 70년의 전통을 깨고 무기한으로 했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프레빈」의 그때 나이 39세, 이것도 하나의 기록을 이룬다.
「런던」에 「데뷔」한 직후 그는 BBC방송기자와의 대담에서 그에게 최대의 소원이 하나 있다면 그건 70세가 되기 전에 LSO의 지휘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에게도 LSO란 그만한 존재였었다. 그런 LSO가 젊은 그를 지휘자로 모셔갔고 보면 「프레빈」이란 속된 말로 「마물」임에 틀림없겠다. 어쨌든 이름이 「런던·심퍼니」래도 LSO는 그저 「런던」의 「심퍼니」이기보다는 세계의 교향악단이라고 하는 게 오히려 적절하다. 작년 한해에도 LSO는 영국에서 20회, 그리고 그보다 많은 30번의 공연을 베풀며 세계를 누볐다. 그리고 14차례에 걸친 녹음이 음반이 돼 지구 위에 퍼진 수는 기백만 장을 헤아린다. 『하루 24시간 세계 어느 구석에선가 LSO의 음악이 흐르지 않는 순간은 없다』고 해도 과히 에누리일건 없다. 그런 그들을 눈으로 보고 듣는다는 것은 어쩔 수없이 소수에게만 베풀어지는 특전일 수밖엔 없는 일이지만. <런던=박중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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