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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 1회용품 강남구 불법 … 길 건너 서초는 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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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A숙박업소가 1회용품을 사용하거나 무료로 제공하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강남대로 건너 서초동 B숙박업소는 합법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정부는 2009년 모텔 등 소규모 숙박업소 영업 활성화를 위해 1회용품 관련 규정(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완화했다. 이에 따라 서초구 의회는 조례를 개정해 이들 업소의 1회용품 사용이 합법화됐지만 강남구 의회는 5년이 되도록 조례를 고치지 않고 있다. 이런 지방 의회가 74곳이다. 안전행정부 박용식 규제개혁팀장은 “중앙정부가 법을 개정해도 지방 의회가 그에 맞춰 신속하게 조례를 개정하지 않으면 국민 생활에 불편을 초래하는 나쁜 규제가 1년 이상 살아남아 민원을 야기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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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제조·판매업체 대표가 되려면 정신감정을 받아야 한다. 때문에 기업들이 이 규제에 대해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요즘도 고개를 흔든다. 이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사람이 먹거나 바르는 물품을 제조·판매하려는 업체의 대표자는 정신감정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화장품 업체 관계자는 “유해성 여부와 업체 대표의 정신감정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천으로 된 현수막과 달리 발광다이오드(LED)를 이용한 전자현수막은 불편하게 달고 떼고 할 필요가 없고 도시 미관에도 좋다. 이우애드 관계자는 “병원·대학 등이 주로 광고에 이용하고 1년씩 장기 계약하는 업체가 있을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자현수막은 전국에 40여 대뿐이다. 자치단체장이 ‘자율관리구역’으로 지정한 곳에서만 설치할 수 있다. 김용춘 전국경제인연합회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정보기술(IT) 시대에 전자현수막이 불법이라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생활 속 황당 규제는 이뿐이 아니다.

 서울 월계동에서 ‘두루가 떡’ 가게를 운영하는 정진숙(37·여) 사장. 그는 지난해 이맘때 정부에 이른바 ‘손톱 밑 가시’ 같은 민생 관련 규제를 없애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관련 규제는 여전히 살아 있다. 식품위생법 및 시행령에는 같은 종류의 떡을 만들어 팔더라도 직접 품질검사를 하면 ‘식품제조·가공업’으로, 그렇지 못하면 ‘즉석판매제조·가공업’으로 구분한다. 정씨는 1500만원이 넘는 품질검사 기계 설치 비용이 부담스러워 즉석판매제조·가공업으로 등록했다. 그 결과 동네 배달 판매조차 못하도록 한 규제 때문에 매출을 제대로 올리지 못해 속상하다. 정씨는 “매출을 늘리려고 배달을 하면 범법자가 된다”고 개탄했다.

 떡류식품가공협회 성은희 부장은 “지난해 문제가 제기됐던 관련 규제를 고치고 있다지만 서민 생활에 직접 피해를 주는 이런 간단한 규제를 손질하는 데도 1년 이상이 걸린다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개설한 문화센터는 학원법의 규제를 받는다. 지난해부터 만 3세부터 고교생 대상 수업을 못하게 한 것이다. 이에 따라 홈플러스 삼척점은 매주 토요일 진행하던 발레수업을 접었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 발레를 배우던 청소년 90명도 꿈을 접었다. 렌터카 차종 규제도 소비자의 불편을 초래한다. 국내에선 소형 트럭이나 미니버스를 빌릴 수 없다. 혼자 사는 사람은 짐이 적어도 이사를 할 땐 이삿짐센터를 불러야 하고, 대가족이 나들이를 갈 때 전세버스를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규제는 물건 값도 올린다. 와인에 대한 식약처의 식품 검사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그래서 수입 와인 업계에선 ‘공무원 마음대로’라는 얘기가 돈다. 특히 로마네 콩티 같은 초고가 와인은 한 번에 3~4병을 수입하는데, 검사를 한다고 한 병을 열면 나머지 와인 값은 두세 배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황당한 ‘갈라파고스’ 규제도 여전하다. 외국 테마파크에는 많지만 한국 테마파크에는 ‘푸드트럭’이 없다. 푸드트럭이 없어 이동식 음식 판매가 불가능해 한국에선 부모가 먼 거리에 있는 식당까지 힘들게 자녀를 업거나 안고 가야 한다.

 규제 탓에 한국 기업은 역차별도 당한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대표적이다. 국내 업체는 사용자의 신용카드 정보를 보관할 수 없다. 결제를 하려면 최대 10단계를 거쳐야 한다. 외국 기업은 한 번 구매한 뒤 두 번째 구매부터는 이런 불편 없이 결제한다.

 안행부 정태옥 지역발전정책관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등록된 지방 규제는 5만2541건에 이른다”며 “투자를 가로막고 불편을 초래하는 동네 규제를 ‘지방규제개혁 추진단’을 가동해 전면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장세정·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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