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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샘 과잉진료 그만" … 의사들이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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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회사원 박민호(33·가명)씨는 2010년 10월 회사 건강검진에서 갑상샘에 1㎝가량 크기의 결절(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직검사를 해서 암 진단을 받았다. 주변에서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야”라고 위로했지만 박씨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의료진은 “그냥 놔두면 암이 퍼질 수 있으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권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은 갑상샘 호르몬제·칼슘제를 복용하고 있다. 갑상샘을 잘라낸 환자는 평생 이런 약을 복용해야 한다. 박씨는 “암이라는 소릴 듣고 수술을 서두르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의사들이 갑상샘암 과잉진단과 과잉수술이 만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갑상샘암은 순한 암이어서 암 세포 크기가 크지 않을 경우 내버려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자 갑상샘암 전문의들이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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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 의대 안형식(예방의학)·신상원(종양내과) 교수, 가톨릭의대 이재호(가정의학) 교수, 삼성서울병원 성지동(순환기내과) 교수, 국립암센터 서홍관(가정의학)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등 8명은 19일 ‘갑상선암 과다진단 저지를 위한 의사연대(이하 의사연대)’를 결성하고 “의학적으로 효용성이 입증되지 않은 갑상샘 초음파 검사를 중지하고 증상이 있거나 혹이 만져질 때만 검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갑상샘암은 2007년 위암을 밀어내고 1위가 된 뒤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 따르면 2008년 한국의 갑상샘암 발생률은 세계 1위다. 반면 사망률은 84위다.

 지난 30년간 30배 증가했다. 위·대장·자궁경부암은 줄어드는 추세다. 2011년 인구 10만 명당 81명이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는데, 이는 세계 평균의 10배가 넘고 영국의 17.5배, 미국의 5.5배다.

 가톨릭대 이재호 교수는 “심각한 자연재해나 방사능 누출 사고 등 갑상샘암을 일으킬 만한 뚜렷한 이유가 없었다”며 “환자의 90% 이상이 과잉 초음파 검사 탓”이라고 지적한다. 고려대 안형식 교수는 “한국인 갑상샘암의 80%는 크기가 2㎝ 미만의 순한 타입(미세 유두암)이며 이 중 1㎝ 미만은 내버려 둬도 별문제가 없는데 병원들이 불필요한 수술을 한다”고 말했다. 2010년 국내에서 3만6554명이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고, 3만2143명이 수술을 받았다. 2012년 24만 명이 2500억원의 건강보험 진료비를 썼다.

 하지만 강남세브란스병원 장항석(외과) 교수는 “의사연대 의사들은 갑상샘암을 진료한 적이 없다”며 “환자 증가는 스웨덴·노르웨이 등 전 세계적인 현상이며 단순히 진단 증가가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반박한다. 장 교수는 “수술하지 않으면 사망률이 수술한 경우보다 네 배 높다”며 “내가 수술한 모든 환자가 건강검진 때 암을 발견했고, 개흉(開胸) 수술을 할 정도로 심각했다. 증상이 없다고 해서 간과해선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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