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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한 시련 겪을 「탈 프랑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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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6년간 「스페인」을 다스려온 「유럽」최후의 「파시스트」 「프랑코」총통(82)이 회복불능의 중태에 빠지게되자 「프랑코」의 후계자로 지명된 「환·카를로스」황태자(37)에게 정권을 이양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작년 8월 「프랑코」총통이 정맥염으로 잠시 입원했을 때 총통권한대행의 임무를 말아보기도 한 「카를로스」황태자는 정치능력 미지수의 인물이다.
그럼에도 「나바로」수상을 비롯한 정부측의 인사들이 정권이양작업을 서두르는데는 「프랑코」라는 존재가 국내외의 비난의 표적이 되고있으며 어느 정치인이 말하듯 『「프랑코」가 「스페인」에 줄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기 때문이다. 노망기를 보이면서도 「스페인」을 통치하라는 사명을 신으로부터 부여받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프랑코」는 이제 보수세력에 대해서도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 되고 있다.
보수파는 「프랑코」가 후계자로 키운 「카를로스」에게 통치권의 정통성을 넘김으로써 좌경한 「포르투갈」의 영향에서 벗어나 계속적인 집권태세를 갖추려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본다면 「카를로스」는 한낱 상징적인 군주에 지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반정게릴라 처형, 궁지>
흔히들 「스페인」을 「리베라」의 회화에 비유한다. 빛과 그림자가 날카로운 대조를 보이고 있는 「리베라」의 그림처럼 보수와 혁신이 타협할 수 없을 만큼 극단적으로 대립되어 있다는 뜻이다. 자유주의 및 종교개혁을 거부하고 「유럽」에 대한 「스페인」독자성을 근간으로 하는 반「유럽」적 전통주의와 황제 및 교회지배를 종식시키고 근대화를 지향하는 혁신주의라는 『2개의「스페인」은 항상 갈등을 일으켜왔다.
지난 9월28일 반정부「게릴라」의 처형은 이 같은 「스페인」의 고민을 드러냈다.
「유럽」각국과 교황의 구명호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처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경찰관을 살해한 범인을 처형하지 않으면 치안임무를 감당할 수 없다는 보수파의 요구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알폰소 13세」의 손자>
그러나 작년 「포르투갈」의 사태에 자극 받은 「나바로」수상이 소위 「아페르프리스모」라는 해방정책을 들고 나와 신문검열을 완화하고 정치조직체의 결성을 허용한 이후 「스페인」의 재야세력은 민주평의회라는 이름아래 결속하여 「프랑코」의 하야를 촉구해왔다.
「스페인」민주평의회의 가장 조직적인 세력은 36년간 지하활동을 해온 「스페인」공산당이다. 「스페인」공산당의 「산티아고·카릴로」는 이미 『「포스트·프랑코」시대는 시작됐다』고 선언하고 국민단합을 내걸었다. 지금 당장 선거를 한다해도 12%의 득표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공산당의 세력은 상당하다.
극좌와 극우의 이같은 대결속을 「카를로스」는 헤쳐나가야 한다.
그러나 「프랑코」이후에 다가올 정치적 진공상태는 「카를로스」혼자만으로 채우기에는 너무 폭이 넓을 것 같다.
「프랑코」이후에 필연적으로 이 양극단세력 사이의 정면충돌을 조화시키기에는 「카를로스」가 너무 「프랑코」와 밀접해있기 때문이다. 결국 「프랑코」의 소망과는 반대로 「프랑코」이후의 「스페인」은 탈「프랑코」의 격렬한 변동을 겪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카를로스」의 본 이름은 「환·카를로스·알폰소·빅토르·마리아·데·부르봉·이·부르봉」으로 어마어마하게 길다. 「스페인」왕국 마지막 왕인 「알폰소」13세의 손자로 「스페인」왕가가 공화파와 왕정파의 내란으로 망명지를 전전하던 1938년1월5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는 10세 때 부친 「돈·환」공과 「프랑코」사이의 협정에 의해 「스페인」에서 교육받기로 하고 「프랑코」에게 위탁됐다.
1백88cm의 훤칠한 키에 2백「파운드」의 당당한 체구를 가진 「카를로스」는 3군 사관학교를 두루 마치고 육군 및 공군대위, 해군중위로 임관됐다. 「요트」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했고, 「제트」기와 「헬리콥터」조종사 자격을 갖고 있으며 태권도의 유단자이기도 하다.
62년에 결혼한 「그리스」의 「소피아」 공주와 3자녀를 위해 「마드리드」북쪽의 방 20개가 딸린 「자르주엘라」궁전이 거처로 정해지고 「스페인」정부는 1년 생활비로 4만3천「달러」(2천1백50만원)를 지급했다.
「카를로스」의 결점은 특히 독창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69년 후계자로 지명>
아마도 2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프랑코」의 보호가 그로 하여금 「프랑코」식의 생각에 젖어들게 했을 것이다. 그는 외국간행물을 읽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걸 왜 읽는가』라고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나의 조언자들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알려주고 있다』고 그는 대답했다.
그는 「프랑코」의 연장선 위에서밖에 생각할 수 없는 「프랑코」지배방식의 도제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카를로스」가 「포스트·프랑코」시대의 혼란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김영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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