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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재현 칼럼

가죽벨트에 매달리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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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

한국 현대사를 흔히 산업화와 민주화, 둘 다에 성공한 역사라고 평가한다. 나도 동의한다. 세대로 나누자면 산업화 세대가 민주화 세대보다 연배가 조금 위일 것이다. 사람에 따라 ‘산업’과 ‘민주’를 한 몸에 겪어내는 경우도 있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서 영세제조업을 하고 있는 김양희(52) 사장이 그런 경우다.

 그저께 김 사장을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함께했다. 사업이 날이 갈수록 힘들다고 했다. 내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으니 책의 보던 페이지를 표시해 주는 조그만 액세서리 같은 게 필요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많이 구입하면 단가가 싸다 했지만 나 역시 업자(!)인 만큼 대답을 얼버무렸다. 대신 나라 경제가 안 좋고 출판시장이, 그리고 신변소품 시장이 정말 어렵다는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았다. 헤어질 때 김 사장은 자기네 공장에서 만든 거라며 가죽 허리띠 한 개를 선물했다. 가죽벨트는 지금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김양희 사장은 고향 후배다. 1990년에 휴대전화 액세서리, 지갑·벨트·팔찌를 만들어 파는 ‘가람상사’라는 업체를 세워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전에는 산업현장에 뛰어든 ‘학출(學出·대학생 출신)’ 노동운동가였다. 81년 이화여대에 입학해 3학년 때 구로공단 가발공장에 처음 위장취업을 했다. 이후 전자회사·봉제회사·가방공장을 전전했다. “남들(다른 위장취업 여대생)은 힘들어 죽겠다는데, 나는 체질인지 팔자인지 공장 일이 재미있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탄광 광부이던 부친은 이대생 딸이 공장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기함을 했다. 부친은 85년 광산기계를 수리하다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김양희씨는 88년 H통산이라는 회사에서 노조 창립을 주도하다 해고당했다. 재봉실 제조사, 벨트회사로 옮겨 일하다 아예 사업을 벌이기로 결심했다. 일이 만만하게 보였고 자신 있었다. 노동운동 전력으론 번듯한 직장을 잡기 힘든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게 ‘민주’에서 ‘산업’으로 무게중심 이동이 이루어졌다.

 산업도 쉽지는 않았다. 처음엔 내수에 주력했다. 벨트·멜빵 따위를 국내 기업에 납품했다. 96년께부터 의류업체가 줄줄이 부도를 맞기 시작했다. 97년 말 외환위기가 덮쳐왔다. 매출이 10분의 1로 결딴났다. 두어 해 힘들게 보내다 2000년 일본 시장을 뚫었다. 이후 10년은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휴대전화 액세서리, 팔찌 등이 도쿄 디즈니랜드 매장에도 깔렸다. 최대의 위기는 구멍 하나에서 시작됐다. 구형 휴대전화는 어떤 기종이든 귀퉁이에 구멍이 있어서 각종 장신구를 매달 수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다르다. 구멍이 없다. 고리형(形) 액세서리는 직격탄을 맞았다. 2011년 3월 일본열도가 도호쿠 지방 쓰나미로 경악하던 날, 일본 거래처에서 전화가 왔다. “앞으로 휴대전화 액세서리 납품을 못 받게 됐다”는 통보였다.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거래처였다. 스마트폰 거치대, 이어폰 줄 정리장치 등을 고안해 샘플을 보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99㎡(약 30평) 공장 규모는 그대로인데 사업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지금은 가죽벨트, 가방용 액세서리 등으로 작은 일본업체를 뚫어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지인들을 통해 국내 판촉물·사은품 시장에 발을 디뎌보려 노력하지만 만만하지 않다. 중국산 저가품, 엔화 가치 하락도 역풍이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김 사장은 생각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어렵기에 “워킹푸어(working poor)라는 말은 딱 내 얘기”라고 했다. 그러나 소규모 제조업, 영세 자영업계에서 자기가 밑바닥은 아니라고 말한다. “허리띠 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걸려 있는 줄 아는가. 버클도 주물·도금 따로이고, 가죽은 털투성이 가죽이 매끈한 원단으로 변하기까지 수많은 소규모 업체가 간여한다. 서울 변두리마다 미싱 두어 대 놓고 온 가족이 달라붙어 지갑·허리띠 만들어내는 지하 공장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합성피혁 벨트 자재를 구하려면 10군데 업체·가게를 다녀야 한단다. 모두 작게는 가족, 크게는 수십 명을 먹여 살리는 대한민국 경제의 실핏줄이다. 하나가 잘 풀리면 다 잘 풀린다.

 김양희 사장의 가장 큰 고충은 소규모 제조업체에 은행 문턱이 너무 높고 절차가 까다롭다는 점이다. 그 많은 공무원·정치인이 규제개혁과 중소기업 육성을 합창하듯 외치는데도? “아마 그 사람들은 이런 절절한 사정을 모를 거다. 사는 물 자체가 다르기 때문 아닐까”라고 그는 말했다. 사실 나는 아까부터 책상 위 가죽벨트를 똑바로 쳐다보기가 미안하다.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