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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잡는 잠자리채? 인문학, 그런 거 아닙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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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도정일 교수는 글이 써지지 않아 머리를 싸맬 때가 많다고 했다. 그럴 때면 온갖 우스운 상상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호기심은 배움의 끝없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논리적이면서 감성적인. 형용모순이지만 우리 시대의 비판적 지식인이자 전방위 인문학자인 도정일(73)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의 글을 설명하는 데는 가장 적당한 표현일 듯하다.

 시대와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서정이 깃든 그의 글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 왔다. 하지만 책으로 읽기는 어려웠다. 그의 단독 저서는 1994년 펴낸 첫 평론집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와 2008년 출간된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두 권뿐. 글을 쓰는 데 게을렀던 건 아니다. 신문과 잡지 등 각종 매체에 꾸준히 글을 써왔지만 책으로 엮는 데 늑장을 부린 탓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서야 그의 글을 제대로 만끽하게 됐다. 총 7권의 ‘도정일 문학선’이 나오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산문집 『쓰잘 데 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문학동네)는 그 시작이다. 출간 1년 만에 평론집으로는 1만여 부가 팔렸지만 절판됐던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도 문학선에 포함돼 재출간된다.

 “내 글을 책으로 내도 될지에 대한 부끄러움과 두려움에다 게으름을 피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그런데 지난해 건강이 나빠지고 단독 저서가 두 권밖에 없는 것도 창피해서…. 더는 미루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도 있고. ‘막차 습성’이지 뭐.”

 두 권의 산문집에 실린 글은 93~2013년까지 쓴 글이다. 오래전 글도 있지만 낡은 느낌은 없다. 오히려 우리의 지금을 쉼없이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한다.

 “글을 추리면서 시의성이 가장 중요했어요. 예전에 쓴 글임에도 요즘 상황에도 맞는 듯해 씁쓸했습니다. 사회가 너무 오랫동안 바뀌지 않으면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의 양이 늘어나는데….”

 그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시장이 사회를 유지하는 유일한 체제로 인식되면서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돈이 되느냐’만 따지다 보니 사랑이나 우정처럼 삶을 지탱하는 가치를 하찮게 여기게 됐다는 말이다. 사랑과 우정 등이 ‘쓰잘 데 없이 고귀한 것’이 돼 버린 셈이다. 인문학이 필요한 것은 그래서다.

 “인문학은 자기 정신을 유지하게 합니다. 본질적인 가치를 잊지 않게 하죠. 인문학은 비판적인 학문입니다. 인간에 대한 성찰과 반성, 정신의 자기 회귀에요. 시선을 밖으로만 돌리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가 2001년부터 기적의 도서관 건립 등 독서운동에 나서고, 2011년부터는 인문학에 방점을 찍은 대학교육에 매진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최근의 인문학 열풍에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인문학을 행복을 위한 캡슐로 여기고, 인문학적 상상력이 돈이 된다고 하는 데 이건 주객이 전도된 겁니다. 인문학은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행복을 잡는 잠자리채로 보는 건 문제에요.”

 그가 생각하는 인문학적인 삶의 자세는 심오하지 않다. 한 페이지라도 책을 읽고 한 줄이라도 자신의 문장을 쓰고 친구와 사귀면서 가슴을 열어보라고 했다. 책 속의 질문을 빌려 물었다. ‘당신은 왜 지구에 왔냐’고. 그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당신을 만나러 왔다”고. 아마도 그가 말한 ‘당신’은 질문을 한 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책을 펼칠 독자일 것이다.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도정일=문학평론가이자 문화운동가. 2001년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을 펼치며 전국 11곳에 어린이 전문 도서관인 ‘기적의 도서관’을 건립했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으로 학부 교양 교육을 쇄신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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