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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 귀국하는 자유중국의「해외두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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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북=김영치 특파원】『자유중국이「뉴스」세계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렇다고 결코 초조해하지 않습니다. 와서 한번 보시면 자유중국이 얼마나「뉴스」가 많은 나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경제발전상을「브리핑」하는 자리서 본 기자를 안내한 임진위씨(자유중국 경제부 국제합작처부처장)의 말이다. 2주 동안 자유중국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동안 그의 말은 점점 생생해졌다. 국제적으로 가장 고독할 듯 싶은 이 자그마한 나라(면적 3만5천9백82평방㎞·인구 1천5백85만명)는『안락하고 번영된 사회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달성키 위해 묵묵히, 그리고 여유 있게 일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칫 불안해질 외적 요인이 숱한데도 정부에서는 60억「달러」규모의 10대 건설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l인당 국민소득 6백97「달러」에 95%이상 도로포장과 전화, 그리고 3가구당 1대의 TV「세트」를 지닌 국민들은 소득의 33%를 저축하고 있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세계의 후진국들이 하나같이 겪고 있는 지나친 빈부격차가 이 나라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인구의 20%인 부유층과 20%인 빈곤층의 소득비율은 52년도에 15대1이나 되었는데 72년도에는 4.6대1로 지극히 좁아진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 동안 자유중국은 빈곤을 추방하기 위해 가속적인 농촌건설과 건전한 도시발전을 꾀해왔읍니다. 그래서 농업기술의 혁신에 중점을 두었읍니다. 그러나 이제 안락하고 번영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자유중국의 l차 산업 구조를 개선, 공업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자유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도미, 11년 동안 화공학을 전공한 서무군 박사(39)도 정부가 적극 추진하는 공업화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근 귀국한 과학자. 두뇌의 해외 유출로 크게 고민하고 있는 동남아 여러 나라와는 달리 자유중국은 최근 매년 해외로 유학 가는 학생들(연 4천 여명)의 절반 이상이 학위를 취득한 후 귀국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외무역관계에서 수출의 예를 보면 농산품이 52년도의 95.2%에서 74년도에는 오직 15.4%로 격감된 반면 공산품은 52년도의 4.8%에서 74년도에는 84.6%로 급증하게 되었지요. 이러한 구조변화는 자유중국의 경제에서 공업의 비중이 점점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귀국하는 과학자나 기술자를 위해서 정부가 특별 대우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서 박사의 말이다. 조국이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조국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것.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우리나라 실정과는 얼마나 다른가.
이와 같은 현상은 화교의 투자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72년도에 2천6백만「달러」던 것이 74년도에는 무려 8천1백만「달러」로 늘어난 것이다. 이는 자유중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액 1억9백만「달러」에 거의 육박하는 액수다.
「좁은 땅덩어리에 자원은 부족하고 대부분의 제조공업이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우리가 재원증가를 계획하고 국토이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읍니다. 최근에는 쌀 증산 위주를 탈피, 값이 비싸고 국제 시장에서 구매력이 강한 버섯과「아스파라거스」등 경제식품재배 기술개발 및 보급에 전력을 다하고 있읍니다. 설탕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격변동이 심한 설탕에 주로 의존하는 것보다는 부산물의 재발에 주력하고 있지요.』
설탕연구소 고문으로 있는 석병지 교수는 자원이 제한된 나라의 경제적인 돌파구는 고가농작물 재배의 권장, 정밀공업의 정책적인 지원에 있다고 역설한다.
임 부처장의 말대로 자유중국은 분명 단계적으로「뉴스」의 세계에서 사라지고 있긴 하지만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개발도상국의 모범국으로서 많은「뉴스」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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