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째공전…부산유괴사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엽기적인 어린이 연쇄유괴살인사건은 첫 사건 발생 후 15일째인 2일 현재까지 경찰수사가 공전을 거듭하고있어 장기화가 예상되고 있다. 수사가 이같이 담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초동수사의「미스」와 미지근했던 초기수사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있다.
지난달 18일 이양(8·부산진구범천동)이 대신공원까지 유괴돼 죽음직전에 등산객에 의해 구조됐을 때 관할 서부서는 단순히 유괴·추행정도로 판단, 적극적인 수사를 펴지 않았고 3일만에 현정양(7·영도구남항동)이 용두산공원에서 손발이 묶이고 목 졸려죽은 시체로 발견됐을 때도 중부서는 껌팔이의 단순변사로 처리하려고 했던 점과 시경과 부산지검에는 배에 범인의 낙서가 없었던 것처럼 허위보고한데서 초동수사의 차질을 가져왔다.
특히 허위보고 때문에 시경의 상황판단이 늦어져 이양 사건과의 동일범 추정에 차질을 가져왔고, 수사본부설치가 29시간이나 지연됐다. 또 현정양시체가 발견된 다음날인 22일 상오9시 중부서 대청일파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도 다른 경찰서와의 유기적인 수사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피해자 가정중심의 수사에만 치중하다가 다른 경찰서관할에서 준일군 사건을 당했다. 경찰이 이양사건과 현정양사건을 낙서내용으로 쉽게 동일범 소행으로 추정할 수 있었는대도 제3의 사건발생에 대비하지 않고 현정양 아버지 주변인물에만 치중한 것은 방향설정이 빗나갔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경찰은 이 두 사건을 숨기기에만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시민들의 수사협조를 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시민 스스로의 범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지 못해 제3의 피해자를 가져온 결과가 됐다.
25일 준일군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시경은 통합수사본부(본부장 이정수 수사과장)를 설치하고 7개 경찰서별로 제각기 수사본부를 설치하는 등 뒤늦게 유괴살해범 수사체제에 몰입했다.
수사본부는 이들 사건에서 피해자 가정끼리의 공통점을 찾을 수 없고 피살자의 시체를 쉽게 눈에 띄는 곳에 유기한 점에서 원한관계나 돈을 목적으로 한 범행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범행 수법상 정신이상자나 성도착증환자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를 폈다.
시내 14개 정신병원과 6개 정신병자 수용소를 대상으로1주일사이 5∼6회씩의 탐문수사를 폈으나 이렇다할 수사단서를 찾지 못했다.
또 범인이 ①공원을 두번이나 이용한 점으로 미뤄 공원을 맴도는 우범자 ②변태적인 행동을 취한 것으로 보아 소녀를 상대로 한 강제추행 전과자 ③범행수법과 낙서내용이 만화적인데서 만화방 이용자 ④범인이 항상 피해자의「샤쓰」를 찢어 끈으로 이용한 점에서「메리야스」의 특성을 잘 아는「메리야스」공장종업원 ⑤범인이 줄자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는 이양의 증언에 따라 재단사와 공사장인부 ⑥사건이 8월중하순에 전격적으로 일어난대서 8·15특별사면 출소자, 단기간 부산에 머문 외항선원 등을 모두 조사했으나 헛수고에 그쳤다.
이들 가운데 범인과 인상이 비슷한 장모(27)·김모(30)등 30여명을 용의선상에 올려 계속 수사중이지만 기대를 걸만한 것은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같이 경찰수사가 장기간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전문적인 수사요원이 모자라는 데다 「수박 겉핥기식」수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같은 장소를5∼6회씩이나 훑고 있는 것으로 반증되고 있다.
특히 박대통령의 특별지시가 내려진 지난달 28일 이후에는 하루 2천 여명씩의 요원이 동원, 반상회·호구방문까지 실시하면서 시민들의 수사협조를 당부하고 있으나 신통한 정보제공이 없다. 특히 범천동에서 대신공원까지 범인을 태워다준 푸른색 「택시」운전사의 신고가 없다는 것은 시민들의 경찰에 대한 고질적인 불신감을 말해 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있다.【부산=손열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