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공산정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최근 서「유럽」 각국의 공산당들은 의회주의를 통한 집권이냐, 아니면 폭력혁명에 의한 독재냐 하는 해묵은 쟁점을 둘러싸고 분열·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은 「유럽」의 공산주의자와 사회 민주주의자가 거의 한 세기를 두고 끌어온 매우 고전적인 「이슈」로 되어 왔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로는 서구 공산당 거의 모두가 자신의 약세를 보완할 목적으로 의회 민주주의와 복수정당제도를 이용하는 전술로 정착했다.
그러던 차에 터진 사건이 바로 「칠레」에서의 「아옌데」 좌익연합정권의 붕괴와 「포르투갈」공산당의 독재화였다.
의회 민주주의와 복수 정당 제도를 이용하려 했던 「아옌데」정권이 하루아침에 군부 「쿠데타」로 전복되자 「아옌데」방식의 정권 형태를 꿈꾸던 서구 공산당들은 적잖이 당황해 했었다.
그래서 서구 공산당을 이론적으로 지도하는 「크렘린」의 「포노마레프」란 자는 『때가 오면 폭력도 써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이 「충고」를 즉각 받아들인 것이 「포르투갈」공산당 당수 「알바로·쿤할」이었다.
지난 3월11일의 우익「쿠데타」 미수 사건과 4월25일 총선에서의 사회당 압승을 고비로「쿤할」은 군부 좌파를 충동해 급격한 폭력 독재 노선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쿤할」은 공공연히 『선거「게임」을 거부한다』고 선언하고서 합법적 다수파인 사회당을 비롯한 언론계·노조·교회·경제계의 모든 반공파를 탄압했다.
이러한 사태는 서구 각국의 사회당들을 격분시킨 것은 물론, 사회당·공산당, 또는 공산당·기민당 간의 연립을 파탄 위기에 빠트렸다.
뿐만 아니라 동·서구의 각국 공산당들도 찬·반 양론으로 갈라져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었다.
기민당과의 소위 「역사적 타협 노선」을 중시하는 「이탈리아」공산당과 「스페인」공산당이 자신의 난처한 입장 때문에 「쿤할」의 폭력 독재 노선을 비난하자 「모스크바」의 심복인 「프랑스」공산당은 「이탈리아」공산당을 「내정간섭」이라고 윽박질렀다.
이에 대해 「프랑스」사회당수 「미테랑」과 「스웨덴」사회당수 「올로프·팔메」는 「유럽」사회당 대회를 열어 「포르투갈」사회당수 「소아레즈」의 「반공투쟁」을 지지한다고 기세를 올렸다.
한편 동구 반소파인 「루마니아」와 「유고슬라비아」도 「포르투갈」공산당의 행위는 「스탈린」주의로의 복귀라고 비난, 「쿤할」을 지지하는 「체코」·동독과 격론을 벌이고 있다.
결국 서「유럽」의 공산주의가 폭력 혁명이라는 19세기 때의 정체를 숨기고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근거, 즉 의회주의 이용전술과 연합전선 전술도 이제는 그 마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일부 「유럽」공산당이 제1당으로 발돋움한 이유는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아서가 아니라 집권당의 실정으로 인한 반사 효과와 좌파 연합의 덕택이었을 뿐이다. 「이탈리아」도 그렇고 「프랑스」도 그렇다.
그러나 이번의 논쟁으로 사·공 연합이나 공산·기민 연립은 불신과 파탄 위기에 처한 셈이다. 또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리스본」의 봄』을 무참히 짓밟은 「포르투갈」공산당의 「스탈린」주의는 『「프라하」의 봄』을 유린한 「크렘린」의 「탱크」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서구의 자유주의자나 사회 민주주의자는 앞으로도 국민의 지지도가 낮은 공산당을 키워 줄 「좌파 연합」을 경계, 차제에 기독교 민주 세력과 손잡고서 공산당을 따돌릴 범 민주 연합을 구상해 봄직도 하다.
「포르투갈」의 경우가 말해 주듯, 비록 서구의 공산당이라 할지라도 공산당은 폭력 독재에의 망집만은 영구히 씻어 버리지 못하는 집단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