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왕의 위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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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느 가족이 한옥에서 화장실이 수세식인 양옥집으로 이사했다. 그랬더니 전에 없던 휴지 값이 가계지출세목 중에 끼게 되었다. 한 집안의 생활수준은 「클리넥스」사용량과 거의 비례한다. 이렇게 보는 사회학자도 있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 만의 얘기다. 「여성 중앙」에서 해마다 뽑는 알뜰 주부를 위한 가계부 상이 있다.
올해 금상을 받은 주부의 가계부에도 휴지 값이 매달 지출되어 있다. 5년 전의 가계부들에는 끼지 않던 품목이다.
이렇게 생활「패턴」의 변화와 함께 소비「패턴」도 바뀌어진다.
우리 나라처럼 생활「패턴」이 급격하게 바뀌어지는 곳에서는 소비「패턴」의 변화도 급격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세대를 흔히 30년으로 잡는다. 분명한 까닭이 있다. 세대의 교체에는 30년이 걸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비「패턴」도 대충 30년을 한 주기로 해서 바뀌어진다.
옛 얘기다. 언젠가 있던 대학생들의 좌담회에서 한 학생이 요새는 반년에 한번씩 세대가 바뀐다고 말했다. 그렇게까지 빠르지는 않다 해도 10년이면 세대도 바뀌는 요즈음이다. 소비「패턴」의 변화「템포」도 그만큼 빨라졌다. 연료만 해도 그렇다.
13년 전에는 석탄의 의존도가 석유 9.5%에 비겨 51%나 되었었다. 이제는 그게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만큼 근대화되었다는 예증이랄까. 비료 소비량도 지난 13년 동안에 12.5배나 늘었다. 인공 비료의 공급이 가능해진 때문이다. 농업이 근대화됐다는 얘기도 된다.
이런 변화가 반드시 발전을 뜻하지만도 않는다. 그토록 비료를 많이 썼으면서도 같은 면적에서의 생산량은 반 배도 늘지 못한 것이다.
소비「패턴」은 단 한 개의 발명으로 바뀌어지는 수도 많다. 이제는 한 여름에도 모시·베 적삼을 입고 다니는 여인을 보지 못한다.
인조 섬유가 유행을 바꿔 놓고 우리네 의생활을 바꿔 놓은 것이다.
우리들의 주생활을 바꿔 놓은 것은 나왕이다. 건축 자재·가구·합판…그 소비량은 13년전에 비겨 몇십 곱으로 뛰어 올랐는지 상상도 할 수 없다.
만약에 나왕의 수입이 없었다면 국민 주택도, 서민「아파트」도 힘들었을 것이다. 한옥이 그처럼 급격하게 자취를 감추지도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10년 동안에 얼마나 또 엄청난 변화가 우리네 소비「패턴」에 일어날 것인지.
소비「패턴」의 변화는 생활「패턴」을 바꿔 놓고 우리네 의식이며 사고「패턴」까지도 바꿔 놓게 마련이다.
다만 변화의 「템포」가 너무 빠를 때에는 언제나 소비「패턴」과 사고「패턴」 사이에는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사회의 움직임이 어지럽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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