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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공작 라인도 개입 … 국정원 두 축 진흙탕 빠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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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정원 압수수색 지난 10일 간첩 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국가정보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실시됐다. 압수 물품을 실은 검찰 버스가 국정원 정문을 나서고 있다. [뉴스1]

남재준 원장 체제의 국가정보원이 깊은 수렁에 빠졌다. 간첩 증거 조작 사건으로 대한민국 대표 정보기관으로서의 위상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특히 대공수사와 대북공작 라인이 사건에 함께 연루된 게 드러나자 “조직을 움직이는 두 수레바퀴가 진흙탕에 빠졌다”는 얘기가 내부에서 나온다.

 검찰 수사는 ▶서울시 간첩단 사건을 처음부터 수사해 온 국정원 대공수사팀과 ▶이들에게 조작된 문서를 보내준 대북공작 라인을 겨냥하고 있다. 이번 문건 위조 논란의 국내 사령탑은 내곡동 국정원 본부의 해외공작 파트라는 게 내부 사정에 밝은 관계자의 설명이다. 원래 이 사건을 수사했던 대공수사팀은 간첩으로 기소한 유씨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해외공작 파트에 “유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해 달라”고 SOS를 쳤을 가능성이 크다.

 해외공작 파트는 대공수사팀의 요구를 받아들여 선양 주재 이모 영사에게 지시를 한 주체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씨처럼 영사로 파견된 해외공작관은 대북정보나 주재국 정부 대상 정보 수집을 하는 게 기본업무지만 본부 지시에 따라 대공수사에 필요한 증거와 서류를 챙기는 것도 중요한 업무”라고 말했다. 암호전문을 통해 해외공작원에게 그때그때 필요한 공작활동을 지시하는 부서가 본부 해외공작 파트란 얘기다.

 이씨 같은 대공수사 요원을 영사로 내보낸 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한다. 최근 수년 동안 탈북자로 위장한 북한 공작원 침투 사례가 급증해 이에 대응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북·중 국경 지역에서 사전에 첩보를 입수해 차단하고 색출해야 하는데 이때 국정원에서 파견한 현지요원만으로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지 사정에 밝고 인맥이 있는 조선족과 탈북자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1990년대 후반부터 북·중 접경 지역의 대북 ‘휴민트’(Humint·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수집정보) 망이 무너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 때문에 현지 활동 정보기관 요원을 철수하는 등 조직망에 문제가 생겼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원세훈 원장 체제의 국정원이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잦은 인사로 휴민트를 망가뜨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지 협조자가 건넨 문건에 대한 위조 여부 확인과 본부 차원의 철저한 검증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국정원 전·현직 직원조차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재판 증거로 제시되면 나중에 드러날 게 뻔한데도 위조문건을 제출한다는 건 국정원 관행상 맞지 않다는 것이다.

 국정원 차장 출신인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은 “정보활동을 하다 보면 협조자와 브로커에게 속는 일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이 2003년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WMD) 의혹에 따라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 잘못된 정보로 드러난 건 좋은 교훈이란 얘기다. 그러나 염 원장은 “본부에서 독촉하면 현지 공작원은 쫓기게 돼 있는데 그 정보보고를 검증하는 건 결국 데스크(서울의 지휘라인)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국정원 관계자는 “간부급에서 위조사실을 알고도 그냥 넘겼다면 남재준 원장도 도의적 책임을 지라는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남 원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대공드라이브가 걸리면서 무리수를 둔 것이란 주장도 내놓는다. 군 정보기관 관계자는 “국정원의 경우 4월 정기 인사철을 앞두고 대공수사나 공작사업의 성과를 보이려 일부 간부가 조급증을 보인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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