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 잘해야 본전 … 아웃당한 야구상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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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해 프로야구에서 넥센은 2008년 창단 후 처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제9구단 NC는 1군에 뛰어들자마자 7위에 올랐다. 두 구단의 공통점은 야구전문 최고경영자(CEO)가 있고, 적은 연봉으로 큰 효과를 냈다는 점이다.

 이장석(48) 넥센 구단주와 이태일(48) NC 사장은 메이저리그의 과학적 구단운영 방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최근 최하진(54) 롯데 사장은 신설된 미래혁신TF팀에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를 공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세이버메트릭스는 통계와 수학을 통해 야구를 분석하는 기법이다. 다른 구단들도 세이버메트릭스를 각자의 방식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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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까지 한국 프로야구는 세이버메트릭스를 참고자료 정도로 활용했다. 선수 구성과 평가는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몫으로 넘기고 구단은 후방지원을 맡았다. 일본 야구단 운영 스타일을 따른 것이다.

 최근 한국 프로야구는 세이버메트릭스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추세다. LG는 2010년 세이버메트릭스의 지표 중 하나인 윈 셰어(Win Share)를 활용했다. 윈 셰어는 팀 승리에 선수가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산출해 고과에 반영하는 것으로, 연공서열에 익숙한 베테랑 선수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시스템이 안정됐고, KIA는 지난해부터 윈 셰어를 연봉 고과에 반영하고 있다. 한국 야구도 기록과 통계를 근거로 가치판단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월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한 넥센 이장석 구단주는 “우리 구단은 아직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부분이 많다. 5~6년 기간을 두고 시행착오를 거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NC는 최근 세이버메트리션(세이버메트릭스 전문가)을 구단 직원으로 채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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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미국에서 미국야구연구협회(SABR)가 만들어지면서 야구 통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세이버메트릭스라는 용어를 만든 빌 제임스는 “야구를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통계를 이용해 야구의 고정관념을 깨보자는 게 이들의 목표였다.

 세이버메트리션들은 ▶무사 1루에서 희생번트는 성공해도 손해다 ▶타율보다 출루율이 더 중요한 지표다 ▶도루 성공률이 75% 미만이면 하지 않는 게 낫다 ▶타점보다 득점이 중요하다 등의 주장을 편다. 전통적인 야구 이론과 거리가 있지만 이들은 수년간의 통계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했다.

 세이버메트릭스는 1990년대까지 야구 매니어의 숫자놀이에 그쳤다. 그러나 2002년 오클랜드 단장 빌리 빈과 2004년 보스턴 단장 테오 엡스타인(41)이 세이버메트릭스를 구단운영에 접목해 성공했다. 이후 세이버메트릭스는 진화를 거듭하면서 WAR(Wins Above Replacement·팀 승리 기여도) 등 여러 복잡한 지표를 만들었다.

 빈 단장은 타율·홈런이 아닌 출루율·장타율이 높은 선수들을 싸게 사들였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총연봉 28위였던 오클랜드는 2002년 102승60패, 2003년 103승59패를 거두며 2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오클랜드가 연봉 총액이 두세 배 높은 부자 구단을 꺾는 스토리는 『머니볼』이라는 이름의 책과 영화로도 소개됐다.

 2002년 보스턴을 인수한 구단주 존 헨리(65)는 세이버메트릭스에 정통한 28세 천재 엡스타인을 단장으로 영입했다. 이듬해 빌 제임스를 구단 고문으로 앉혔다. 파격적인 인사의 결과는 더 놀라웠다. 보스턴은 2004년 86년 만에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올랐다.

 물론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한 회의론도 있다. 과거 자료인 통계가 미래까지 예측하기엔 충분하지 않고, 사람의 심리 등 복잡한 변수를 계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구단은 세이버메트릭스를 배우면서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항하고 있다. 한국 구단도 마찬가지다. 의사결정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세이버메트릭스를 배우고 활용하고 있다.

 국내 세이버메트리션 1세대로 평가받는 박기철(56) 스포츠투아이 전무는 “세이버메트릭스가 1~2년 안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전문가들의 참여를 통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작업”이라며 “지금까지 넥센과 NC가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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