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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의 反 금병매] (1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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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무식 형은 양곡현에 여전히 살고 계신단 말이지? 용케도 극심한 가뭄을 이겨내셨구나. 그런데 너는 그 동안 어디에 있었나?"

무대가 반가운 마음을 시선에 실어 무송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형님도 아시다시피 제 성격이 좀 불 같지 않습니까. 동추밀 벼슬에 있는 자가 얼마나 잘난 체하는지 내가 술에 취하여 그만 그를 주먹으로 냅다 갈겼지 뭡니까. 그 자가 졸개들을 보내어 나를 잡으려고 하는 바람에 창주 횡해군에 있는 소선풍 시진 어른 집으로 몸을 피하여 숨어 지냈습니다. 그 분은 후주 2대 황제이신 시세종의 정통 적파 자손으로 의리를 중히 여기고 재물 욕심이 없으셔서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소맹상군이라 부르지요.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제가 그 분 집에 있는 동안에 학질에 걸려 1년 이상이나 죽을 고생을 하였지요.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까 그리운 건 흩어진 가족들뿐이더군요. 그래서 형님을 찾아 나선 거지요."

무송의 부리부리한 두 눈에 어울리지도 않게 눈물이 촉촉히 배어들었다. 무대는 아예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금련은 그 형제 둘을 다시금 비교해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남편은 눈물을 흘려도 얼마나 청승맞게 우는가. 그런데 도련님은 얼마나 의젓하게 눈물을 내보이는가. 저렇게 우락부락하게 생겼어도 가슴에는 정감이 있는 사내인가 보다.'

무송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여 금련이 또 사르르 무송을 향해 눈웃음을 쳤다. 그러나 무송은 금련의 눈웃음을 의식하지 못한 채 무대와 이야기하는 데만 열중하였다.

"나는 형님이 가뭄으로 인해 고향을 떠났지만 이제는 다시 양곡현으로 돌아와 있지 않나 해서 우선 양곡현으로 향했지요. 며칠을 걸어 산동성 경계에 이르러 경양강 산을 넘으려고 하는데 파수병들이 입산을 하지 못하게 막는 거예요."

"호랑이 때문에 그랬구나."

"어머, 도련님, 호랑이 잡은 이야기 해봐요. 정말 재밌겠다."

금련이 무송 쪽으로 몸을 기울여 그의 어깨를 슬쩍 건드렸다. 무송이 의자에서 약간 엉덩이를 옮겨 금련과 사이를 두고 음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사시(9~11시)에서 미시(13~15시)까지만 산을 넘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도 반드시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어 산으로 들어가야지 혼자나 몇 사람은 되지 않는다고 했어요. 나는 호랑이를 만나도 겁나지 않으니 혼자 산을 넘을 수 있다고 해도 파수병이 절대 허락을 해주지 않았어요. 하룻밤 주막에서 묵고 내일 아침에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르라는 거예요. 나는 주막으로 들어가 하룻밤 묵는 척하고는 술을 몇 잔 들이켜고 나서 몽둥이를 들고 뒤쪽 산길로 들어섰지요. 날이 어둑어둑해져 나무들도 잘 보이지 않는데 어스름 속에서도 푸른 윤기가 흐르는 바위 하나가 떡 버티고 있었어요."

"그 바위라는 게 호랑이였어요? 어머, 점점 무서워지네."

또 금련이 의자를 살짝 끌어 자신의 팔꿈치가 무송의 허리께에 닿게 하였다. 무송은 거기에 대해서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자기 이야기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건 호랑이가 아니라 소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였어요. 그 바위에 올라가 소등에 올라탄 기분으로 드러누워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으스스한 바람이 불어오는 거예요. 호랑이가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였지요.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고, 낙엽을 밟으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호랑이 발자국 소리도 들렸어요."

무대와 금련도 혀 끝으로 입술에 침을 묻혀가며 긴장하였다.

"호랑이가 와락 달려드는 느낌이 들어 내가 몽둥이를 집어들고 풀쩍 뛰어내려 바위 뒤에 몸을 숨겼지요."

무송이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시늉을 하며 발을 움직이는 바람에 그만 금련의 전족을 밟게 되었다. 그 순간, 짜릿한 쾌감이 호랑이보다 더 빠르게 금련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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