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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혼자서도 잘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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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속초에서 볼일 보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차는 막히고 배는 고프고 바쁠 것도 없고. 쉬엄쉬엄 구경이나 하며 맛있는 것이라도 먹고 가야겠다 싶어 국도로 핸들을 돌렸다. 한참을 가다 보니 하늘이 온통 하얀 연기로 자욱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 창문을 열었다. 와, 고소한 고기 굽는 냄새. 여기가 그 고추장 돼지 숯불구이로 유명하다던 홍천이구나. 그럴듯해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 무리의 손님이 다녀간 모양인지 여기저기 식탁마다 먹다 남은 음식들이 치워지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깨끗한 테이블을 골라 앉았다.

 종업원으로 보이는 아줌마 한 분이 다가와서 식탁에 물수건을 놓으며 묻는다. “몇 명?” 혼자라고 하니 “1인분은 안 돼요” 하기에 “2인분 주세요” 했다. 구석의 작은 테이블을 가리키며 그곳으로 옮기라고 한다. 점심때도 지났고 저녁이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참 치사하다 싶어 구시렁거리며 옮겨 앉았다. 발갛게 달군 숯으로 가득한 화덕이 테이블에 놓이고 스테인리스 쟁반에 양념 돼지불고기랑 반찬들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2인분이라 해봤자 보통 사람 혼자 먹기에도 부족해 보이는 양이다. 허겁지겁 고기를 구워 입에 넣는 순간, 아까 주문을 받았던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다. 좌우를 둘러보니 몇몇 손님도 내 얘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아차, 나는 먹다 말고 휴대전화를 열어 심각한 문자라도 보는 척했다. 성질 더러운 탓에 친구가 없어 혼자 밥 먹는 게 아니라 그저 열심히 하다 밥때를 놓쳐버렸다는 무언의 메시지다. 입으로는 고기를 씹고 눈으로는 휴대전화를 바라보고. 허기진 배가 채워지니 식당에서 고기 2인분을 혼자 구워 먹는다는 것이 좀 창피하단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나와 차에 올랐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혼자 식당 가기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붐비는 식사시간에는 더더욱 못 간다. 4인용 테이블의 식당 구조상 달랑 1인분을 시키면서 4인석을 차지할 수도 없고. 메뉴도 문제다. 특정 메뉴는 ‘2인분 이상’으로 아예 못을 박아 놓는 경우가 많다. 탕이나 찌개는 1인분이 많지만 혼자 즉석구이나 즉석찌개를 먹고 싶을 때는 어쩌나. 상차림이 번거롭다면 가격을 2인분 가격의 3분의 2 정도를 1인분으로 받으면 되지 않을까.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26%나 된다고 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면 모든 시스템도 덩달아 혼자 하기 적합하도록 바뀌어야 되는 거 아닌가. 혼자 밥 먹고, 혼자 영화 보고,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이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도록 말이다.

 혼자 영화 보러 가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는 한 영화광을 안다. 영화표 한 장만 달랑 사기에는 ‘쪽팔려서’ 두 장 사는 걸로 시작했더란다(표를 창구에서 직접 구매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막상 옆자리를 비워둔 채 영화 관람을 해보니 영화에 깊숙하게 몰입할 수 있어 참 좋더란다. 그래서 그 다음부턴 아예 세 좌석을 사서 그 가운데 달랑 혼자 앉아 호화 관람을 즐긴다는 말을 들었다. 혼자 보는 영화는 혼자 먹는 밥보다 남의 시선을 비껴갈 수는 있겠다. 깜깜하니까 말이다.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됐는데 혼자 가기엔 남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누구를 불러낼까 고민 중인 사람들. 참고하면 좋으리라.

 여럿이 밥 같이 먹는 것도 좋긴 하다. 하지만 혼자 즐겨야 할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까지 불러서 말을 섞으며 밥을 먹어야 한다면 그건 감정 낭비다.

 모르는 사람과 같이 밥을 먹는다는 ‘소셜다이닝’이란 말이 있다. ‘먹방’이란 말도 생겼다. 모여서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며 밥 같이 먹자는 말이지만, 생명 유지를 위해 끼니 때우기라도 하듯 식당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혼자 대충 때우기는 싫다는 거다.

 혼자 먹는 밥. 만약에 혼자서도 품위 있게 먹고 즐길 수 있는 정식 메뉴와 테이블까지 잘 갖춰 놓은, 질 좋은 식당이 많아진다면 어떨까. 술집 카운터 모양으로 생긴, 좌석마다 불판과 환기통까지 있는 1인용 자리를 만들어 놓으면 어떨는지.

 또 식사 때를 놓쳤다. 읽을거리 한 장 들고 식당에 갔다. 혼자 구석에 앉아 호기심 가득한 남들 시선 마주치기보다는 글이라도 읽으면서 먹겠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