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중국 읽기] 중국의 위기는 국가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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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둔필승총(鈍筆勝聰)이란 말이 있다. 무딘 붓이 총명함보다 낫다는 이야기다. 책을 보고 며칠 지나면 알갱이는 흩어지고 잔상(殘像)만 남는다. 그래서 몇 자 옮겨 적기 시작했다. 그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제7화>『CHINA 3.0』 (2013년 10월, 유럽외교관계협의회 엮음, 청림출판)

♨ 서방이 중국에 대해 갖는 몇 가지 잘못된 인식이 있다. 중국이 발전하면 저절로 서방 시스템에 편입될 것이란 믿음이 그렇고, 또 중국은 무조건 서방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생각 등이 그렇다. 이 책은 이제 그런 안이한 사고와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 내부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논쟁을 들여다 보지 않고선 중국의 부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49년부터 30여 년은 마오쩌둥 치세의 차이나 1.0 시대였다. 경제는 계획경제, 정치는 레닌주의, 외교는 혁명의 국제적 확산에 주력했다.

이후 덩샤오핑에서 장쩌민과 후진타오로 이어지는 30여 년은 차이나 2.0 시대다. 경제는 수출주도형 성장으로 특징되고 정치는 안정이 모든 걸 압도하며 외교는 조용히 힘을 기르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시대다. 이제 시진핑의 등장으로 중국에 차이나 3.0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2.0 시대의 중국이 1.0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고자 했다면 3.0 시대의 중국은 2.0 시대가 남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아이러니컬하게도 3.0 시대의 숙제는 2.0 시대에 추구했던 목표가 달성된 데 따른 것이다. ‘성공의 덫’에 빠졌다는 이야기다.

경제적으로 과거엔 빈곤을 걱정했지만 이젠 풍요가 가져온 빈부격차 등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정치적으론 안정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오히려 사회적 갈등이 심화됐고 외교적으론 힘이 축적됨에 따라 저자세 외교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볼멘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경제 해법을 놓고 신우파와 신좌파가 맞선다. 신우파는 국유기업 민영화와 기업가정신 고양이 답이라고 말한다. 반면 신좌파는 중앙정부의 계획과 개입이 계속돼야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에선 선거와 법치 등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자와 최고 권력자의 카리스마만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신권위주의자로 양분된다. 외교에선 신중하라는 국제주의자와 당당하게 세계에 맞서라는 민족주의자로 나뉜다. 시진핑 체제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차이나 3.0 시대의 중국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1949년의 건국과 1978년의 개혁개방과 같이 격변의 성격을 띨 전망이다. 이 책은 『중국은 무엇을 생각하는가』의 저자로 유명한 마크 레너드가 집행이사로 있는 유럽외교관계협의회가 기획했다. 15인의 중국 인사를 인터뷰했는데 그 중 몇 부분만을 정리했다.

◇마크 레너드=유럽외교관계협의회 집행이사

☞ “중국인들은 역사 흐름을 30년 단위로 파악하는 전통이 있다. 30년을 기준으로 보통 1949년에서 1978년까지 마오쩌둥이 집권했던 시기를 ‘차이나 1.0 시대’로 분류한다. 이 시기는 경제적으로는 계획경제, 정치적으로는 레닌주의, 외교적으론 글로벌 혁명의 확산에 주력했다. 1978년 덩샤오핑의 집권부터 2008년 세계 금융위기까지 시기는 ‘차이나 2.0 시대’로 분류한다. 덩샤오핑 집권기의 경제정책은 중국특유의 사회주의로 명명된 ‘관치금융’과 ‘수출 주도형 성장’으로 요약된다.

이 시기의 정치적 키워드는 1989년 6월에 발생한 천안문 사태의 영향으로 중국 고위층 사이에 형성된 ‘정치 안정’이라는 암묵적 합의였다. 외교적으로는 저자세를 유지하되 조용히 힘을 키워 나가며 중국 발전을 위한 평화적 대외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아 맞춰졌다” (7~8쪽) (촌평: 마오쩌둥부터 덩샤오핑에 이르기까지의 중국의 정치·경제·외교 노선이 간단 명료하게 정리돼 있다)

☞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기존 성공 신화의 몰락을 경험했다. 경제적 풍요, 정치적 안정, 외교력 축적이라는 덩샤오핑 시대의 3대 목표 모두가 당면한 새로운 문제점의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까지 제기됐다. 이를 파리정치대학 교수인 프랑수아 고드망은 ‘성공의 덫’이라 정의했다…‘차이나 3.0’ 시대가 앞서 말한 세 가지 성공의 덫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 받고 있는 이유다. 심지어 많은 사람은 이런 변화가 1949년의 신중국 수립이나 1979년의 시장경제 허용과 같은 격변의 성격을 띨 것으로 예견한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중국 개혁가들에게는 참고할 만한 외국의 모델이 없다. 이번 변화의 심각성이 여기에 있다” (8~9쪽)

☞ “이 책은 독자들에게 중국 엘리트 사회 내부의 갈등을 소개하려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무엇보다 우리는 중국의 새로운 노선들에 내재한 오류를 발견하려 했다. 현재 중국의 경제 노선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사회진화주의 신우파다. 이들은 모든 국유기업을 민영화해 기업가정신이 자유롭게 분출되기를 원한다. 다른 하나는 평등주의 신좌파다. 이들은 지혜로운 중앙정부의 계획에 의해 경제성장이 이뤄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정치분야는 자유주의자(liberalist)와 신권위주의자(neo-authoritarians)로 양분된다.

자유주의자들은 선거, 법치, 대중의 정치참여 등을 통해 국가 권력을 축소하기를 희망한다. 반면 신권위주의자들은 이 같은 조치들이 기득권층의 부정부패, 정실자본주의 등에 도전하거나 이를 척결할 수 없는 관료화된 집단 지도체제를 낳을 것을 우려한다. 외교분야는 크게 국제정치의 기존 틀 안에서 중국이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길 원하지만 신중함을 중시하는 소극적 국제주의자(internationalist)와, 중국이 세계무대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길 원하는 국수주의자(nationalist)로 나뉜다” (9-10쪽)

◇위용딩(余永定)=거시경제학자. 중국인민은행 통화위원

☞ “중국은 현재 12차 5개년 계획에 입각해 연간 성장률 7%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성장률을 5년 간 감수해야 하는 장기적 조정기에 들어선 상태다. 이 기간 가장 큰 문제는 ‘어떤 경제 주체가 그 고통을 떠안을 것인가’이며, 이는 경제적 이슈보다는 정치적 이슈에 가깝다. 이번 성장 패턴 재조정에는 틀림없이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이에 성공한다면 다시 10년 혹은 20년 동안 연8% 연속 성장 신화가 가능할 것이다. 중국은 어떤 경제지표를 기준으로 판단해도 1인당 소득 기준에서는 여전히 빈곤국으로 분류된다…(중국에) 미해결 과제가 많다는 것은 중국이 향후에도 발전할 여지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49쪽)

◇린이푸(林毅夫)=전 세계은행 부총재. 베이징대학 교수

☞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가장 중요한 비결은 신속한 기술혁신을 가져다 준 기술을 낮은 비용으로 도입한 덕분이다…중국과 미국의 소득 격차는 중국과 선진국 사이에 여전히 큰 기술 격차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중국은 이런 기술격차가 해소되기 전까지는 상대적 낙후성의 이점을 성장에 활용할 수 있다” (60쪽) (촌평: 린이푸는 중국의 성장 잠재률이 아직 높다고 보는 대표적인 낙관론자다)

◇장웨이잉(張維迎)=신우파 선두주자. 베이징대학 교수

☞ “지금 중국경제의 위기는 시장의 실패가 아닌 국가의 실패에서 비롯됐다. 정부의 지나친 간섭과 개입이 부정부패와 빈부격차를 낳았다. 국유기업이 주요 산업을 독점하면서 그 동안 성장을 주도했던 사영기업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국가의 독점을 타파하고 시장을 살려야 한다. 그것이 개혁의 시작이다. 정부 정책이 오늘의 중국을 만들었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중국의 경제발전은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민영 부문을 부단히 확대했기에 가능했다. 성장동력은 민간에서 나왔다.

‘차이나 모델’이 각광받았던 지난 10년 동안에는 오히려 부정부패와 빈부격차가 심화됐을 뿐이다. 시진핑 시대의 사회에는 이익과 이념의 대결이 펼쳐질 것이다. 개혁 이념을 가진 지도자들은 기득권 타파에 나설 것이고 기득권층은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전열을 정비할 것이다. 문제는 리더십이다. 덩샤오핑과 같은 강력한 개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GDP 총량이 미국을 추월했다고 해서 곧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될 수는 없다. 중국은 국력 향상에 따른 국제적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

그 동안 국내 발전에만 관심을 뒀지만 앞으로는 글로벌 안목이 필요하다. 자유와 민주를 중요시하지 않는 국가는 절대로 리더십을 갖춘 국가로 성장할 수 없다. 민주, 자유, 법치, 인권 등 보편적 가치가 중국에서도 충분히 인정돼야 한다”(74~76쪽) (촌평: 장웨이잉의 바른 소리는 곧잘 중국 당국의 미움을 산다)

◇왕사오광(王紹光)=신좌파 핵심 인물. 홍콩 중문대 교수

☞ “지난 60년 간 중국은 두 번의 역사적 발전 단계를 성공적으로 거쳤고, 바야흐로 세 번째 역사적 단계에 들어섰다. ‘중국식 사회주의 3.0’ 이라는 새로운 길 개척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식 사회주의 1.0 시대는 1949년 신정부 수립 직후부터 78년까지를 일컫는다. 이 시기에 중국은 1인당 GDP가 500달러 수준에서 1000달러에 이를 만큼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당시 중국은…집단소유제와 계획경제라는 사회주의 모델을 채택했다…(1979년부터 시작된 2.0 시대엔) 절대 빈곤을 해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절대다수 국민들의 소득과 소비를 높이는 방향으로 국가발전 목표를 옮겼다…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던 공유제가 다양한 형태의 사유제로 차츰 바뀌었고, 계획경제도 시장경제에 조금씩 자리를 내줬다… 1인당 소득이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자 이제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절대다수의 소득과 소비수준을 끌어올리려 했다…최대치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회 정의, 각종 노동권, 공중보건과 의료, 환경, 국방 등의 영역에서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이 때문에 사회 불안, 불평등, 불만이 조성됐고, 이는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2002년에 1인당 GDP가 4000달러를 초과하면서 중국은 샤오캉(小康)사회, 즉 중진국 수준의 번영을 누리기 시작했다. 이 단계에서는 ‘중국식 사회주의 3.0 시대’로 명명될 새 사회주의가 태동할 것이다…먹고 사는 문제는 더 이상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중국식 사회주의 3.0 시대에는 공공재와 공공서비스 분야에 대한 실질적 투자를 확대하고 사회복지 수준을 비약적으로 높여야 할 것이다” (79~88쪽)

◇쑨리핑(孫立平)=칭화대 사회학과 교수. 시진핑의 박사학위 논문 심사위원

☞ “과거 중국 정부는 주민들의 소요 사태가 발생하면 예외 없이 사태가 진정될 때를 기다렸다가 주민들의 요구가 정당했고 또 그 요구를 정부가 수용했던 경우라도 주동자들을 처벌해왔다.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다가 나중에 보복한다는 의미에서 ‘가을걷이 후 정산(秋後算帳)’으로 불리던 이런 관행에는 잠재적 소요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정부 측의 의도가 포함돼 있었다” (103~104쪽)

◇마이클 안티(趙靜의 필명)=뉴욕타임스 베이징지국 연구원 역임

☞ “중국의 인터넷은 ‘글로벌 인터넷’과 중국 정부가 언제든지 서버를 통제할 수 있는 ‘차이나넷(Chinanet)’으로 나누어져 있다…글로벌 인터넷은 중국 정부에 의해 검열당한 데 반해 차이나넷은 순조롭게 급성장했다. 중국 정부가 한편으로 외국의 모든 웹사이트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거나 속도를 떨어뜨려 접속을 불편하게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구글 대신 바이두, 트위터 대신 시나 웨이보, 페이스북 대신 런런망(人人網), 유투브 대신 요우쿠(優酷) 등 일련의 복제 사이트를 활성화했기 때문이다” (150쪽)

☞ “중국 정부의 인터넷 대책은 단순했다. 글로벌 인터넷은 차단하고 비슷한 기능을 가진 차이나넷 복제 사이트를 활성화하는 방식이었다. 이것이 바로 ‘스마트한 검열’이다…중국 정부는 우선 소셜네트워크에 대한 네티즌의 수요를 충족시켰다. 그런 다음 웹사이트 운영회사에 서버를 베이징에 설치하도록 해 필요하면 언제든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구글이 중국에서 철수한 것은 바로 이 조건 때문이었다. 구글은 서버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중국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151쪽)

☞ “당국의 검열에도 불구하고 현재 중국에서 소셜네트워킹 활동이 활발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첫 번째 이유는 중국어의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서방의 트위터나 중국의 트위터 복제 사이트인 웨이보는 1회 게재 가능한 최대 글자 수가 140 글자다. 영어로 140 글자면 평균 20 단어로 대략 한 문장에 해당하는데, 이런 구조라면 트위터 글쓰기 1회에 특정 이슈의 제목 정도만 쓸 수 있다. 그러나 중국어로 140 글자는 한 단락 정도를 담거나 혹은 특정 이슈 전체를 작성할 수 있다. 즉 중국 네티즌의 1회 트윗은 영어권 네티즌의 3.5회 트윗과 정보량이 비슷하다. 중국어로 마이크로블로그를 의미하는 웨이보는 사실 트위터보다 페이스북의 복제 사이트에 더 가깝다…웨이보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마련된 여론 광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웨이보를 통해 중국인들은 자유에 대해 토론하고 다른 사람과 타협하는 방식을 익히기 시작했다” (152~154쪽)

☞ “현재 중국에서는 웨이보에 게재되는 모든 내용이 당국에 의해 저장되고 분석된다. 예를 들어 인터넷 상에 ‘다 함께 모이자’, ‘만나자’, ‘행진하자’ 등의 게시글을 올린 뒤 약속장소에 나가면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 있는 경찰을 발견하게 된다” (155쪽).

유상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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