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본농업기술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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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삼성「그룹」의 용인종합단지 개발본부에서는 이웃 일본의 선진 영농기술을 습득, 보급하기 위해 많은 젊은 일꾼들을 파견해 왔다. 지난 3월11일부터 3개월간 천엽·기옥·신석·북해도 등지에서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김광두(33·수종개량담당) 이운진(27·양돈담당) 송세태(24·양돈담당)씨로부터 보고 듣고 느낀 바를 들어봤다. <특별취재반>
▲사회=석달 동안이면 단기「코스」인데 영농기술 학교를 마치고 왔는가.
▲김=진짜 기술을 배우려면 밑바닥에 파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농장과 목장에서 그곳의 전문가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똑같이 일하며 3개월을 보냈다.
▲사회=하긴 생생한 체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훨씬 쓸모가 있을테니까. 그래서 우리가 제일 먼저 배워야 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무엇보다도 근면성이다. 나도 여기서는 내로라는 상일꾼이라고 자부해 왔는데 천엽의 경성장미원에서는 두 번이나 코피를 쏟았다.
저들하고 똑같이 일한 것이 나한테는 과로였던 것이다. 도대체 일하는 시간에는 담배 한 모금을 안 피우고 마치 기계같이 일만 한다.
한데 이것이 몸에 배니까 노인들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경성장미원에는 70∼75세의 할머니 5명이 품삯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젊은이들하고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이=간부와 막일꾼이 혼연일체가 되어 일하는 것을 보니까 『아하, 잘 살만도 하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침 작업시작 전에 엽차 한잔씩을 놓고 부장으로부터 품삯 일꾼까지 전부가 모여 그날의 일거리를 분담하지만, 일거리가 눈에 띄면 부장이라도 품삯 일꾼을 시키지 않고 직접 해치워 버린다.
▲김=정말 모두다 그렇더군. 신석현신진시 자성장의 화향원에서 원예기술을 배울 때인데 사장 부인이 인부 15명의 밥짓기·세탁 등 뒤치다꺼리를 혼자서 해치우는데는 완전히 놀랐다.
자가용 3대에 하루 매상액이 50∼1백만「엥」이나 되는 부자인데도 가정부조차 안썼다.
▲사회=거 좀 심한거 아닌가.
▲김=글쎄, 보기 나름인데 직접 대해 보니까 존경심이 생기더군. 그리고 우리가 그런 곳만 골라 다녔는지는 몰라도 부지런하고 일거리를 사양하지 않는 점에서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송=나도 그런걸 느꼈는데 한번은 새벽 5시쯤 비바람이 몰아치니까 목장에서 자던 일꾼들이 사장·부장·일꾼 일을 한꺼번에 해치우더군. 부장이 돼지먹이를 나르거나 밥통 청소하는 것은 예사였고….
▲사회=기술적인 면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는가.
▲이=많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골치 아프게 전문적인 얘기를 늘어놓기보다 기술개발 및 보급과 관련된 얘기를 몇 가지 하고싶다.
우선 이들은 남이 개발한 기술을 열심히 배우려하고 또 이것을 가르쳐 주는데 인색하지가 않았다. 아마도 양돈기술이 어딜 가도 우리보다 앞서있는 것은 이 때문인 것 같았다.
▲송=나도 지엽적인 기술보다 정신 자세를 배워야겠다고 느꼈다.
예컨대 한곳에서는 돼지밥통에다가 철판을 대고 밥통주위를 「시멘트」로 다지는 간단한 장치로 사료값의 50%를 절약하고 있었다.
돼지가 여물을 먹다가 고개를 주억거릴 때 철판이 주둥이 주위의 여물을 밥통에 긁어 넣는 역할을 하고 「시멘트」 바닥에 떨어진 여물도 다시 사용한다는 것이 이 장치의 목적이었다.
한데 농장주인은 이번 가을에 돼지 「쇼」가 열릴 때 이 사실을 전국의 양돈가들에게 알려줄 방침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절약의 「아이디어」는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도 보급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풍토였다.
▲김=정신적인 자세가 중요하다는 점은 나도 동감이다.
경성장미원의 암파 과장은 일본서도 이름난 장미원예전문가인데 『장미 가꾸기에서 가장 첫 번째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아주 간단하더군.
『장미의 소리를 들어라』는 거야. 처음엔 아마, 철학적으로 나오시네 하고 가볍게 넘겼었는데 생각할수록 옳은 얘기인 것 같아. 요컨대 정성을 쏟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술을 배웠더라도 소용이 없다는게 그분의 주장이었지. 암파 과장은 또 『최고의 거름은 주인의 발짝』이라는 말도 해 주더군.
▲이=양돈 전문가들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돼지가 사람을 따르고 사람이 돼지를 사랑해야 잘 자란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어.
▲사회=배울 점이 그토록 많았으면 배우지 말아야할 점도 있었을 텐데….
▲김=사람이 기계의 부속품처럼 되는 것은 아무래도 끔찍하게 느껴졌다. 아마 이런 것을 가리켜 소외현상이라고 부르는가 보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기계처럼 정확히 열심히 일하는 사이에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어쨌든 보기에도 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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