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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63년 만에 '3금' 손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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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육군사관학교가 ‘3금(금연·금주·금혼)제도’를 전면 손질한다. 1951년 4년제로 전환하면서 사관생도들의 교육방침이 된 지 63년 만이다. 육군은 3금 제도의 수정을 골자로 한 제도·문화 혁신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9일 밝혔다.

 그동안 육사는 생도들의 음주나 흡연을 영외에서도 원칙적으로 금지해왔다. 관리자의 허가를 받을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영외에서 사복을 입고 음주와 흡연을 해도 문제삼지 않는다. 육사에 다닐 때 결혼하는 건 여전히 금지하지만 혼전 성관계는 더 이상 처벌하지 않는다. 혼전 관계를 맺을 경우 관리자에게 보고하도록 했던 ‘양심보고’ 제도도 폐지한다. 다만 1학년 생도끼리의 교제, 생도와 장병·군무원의 교제는 계속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육군 관계자는 “아무리 시대변화에 맞추더라도 전투력 하락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의 경우 교내 음주도 학년별·날짜별·장소별로 규정을 두고 허가하고 있다. 학교에서 20마일 이상 거리만 떨어지면 음주에 대한 제한이 없다. 흡연도 강의나 훈련 중만 아니라면 교내 지정된 장소에서 가능하다. 이성교제에 대한 제약은 아예 없다. 1982년 만들어진 영화 ‘사관과 신사’에서도 제복을 입은 사관생도와 교제하는 여공의 각종 러브신을 볼 수 있다.

 뒤늦게 육사가 3금 제도를 수정하는 것은 지난해 벌어진 두 건의 사건과 관련이 있다.

 지난해 5월 육사 체육대회 기간 중 교내에서 여생도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육군은 3금 제도를 강화하는 강도 높은 관리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오히려 시대흐름과 동떨어진 규제라는 반대 여론이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주말 외박 때 여자친구와 혼전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진씨가 퇴교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4학년 생도였던 진씨는 “결혼을 앞두고 있어 법적·도덕적 문제가 없는 만큼 퇴교조치는 지나치다”며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가 모두 진씨의 손을 들어줬다. 1월 서울고등법원 행정3부는 “육사 생도가 성관계를 맺은 것은 내밀한 자유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미풍양속을 해치거나 성군기를 문란하게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육사의 ‘동침과 성관계 금지규정’은 과잉 적용할 경우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도 했다.

 생도들의 이탈도 잇따랐다. 지난해에만 생도 45명이 스스로 육사를 떠났다. 1년에 280명 정도 입학하는 것을 감안하면 6명당 1명이 중도하차한 셈이다. 사유는 다양했지만 사관학교 분위기에 대한 적응 문제가 작용했을 것으로 육군은 보고 있다.

 육군은 3금 제도를 사실상 폐지하는 대신 생도를 뽑을 때 적성검사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1차 학과시험의 합격자 수를 정원의 4배수에서 5배수로 늘리고, 2차 적성시험 평가 비중을 15%에서 25%로 높인다.

 육사와 마찬가지로 3금 제도를 시행 중인 해·공군사관학교의 ‘결단’에도 관심이 쏠린다. 군의 한 관계자는 “사실상 사법부까지 3금 제도에 경종을 울렸는데 더 버틴다는 건 무리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시대와 안보상황이 바뀌면서 사관학교도 전환기를 맞고 있다”며 “무조건 다 바꾸는 것만도 능사는 아닌 만큼 한국 상황에 맞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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