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폐가요가 왜 많아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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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퇴폐가요의 정화문제가 새삼「뉴스」가 되면서 항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어 나같이 이 방면에서 거리가 먼 자리에 서 있는 사람에게도 귀를 기울이게 한다.
비록 한 시민으로 서지만 그런「뉴스」에 대하여 그저 마이동풍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 평상시의 소감은 도대체 한국의 TV나「라디오」의 오락「프로」에선 대중가요가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인상이다. 선진 외국의 경우 내가 아는 한 대중가요보다 고전음악「프로」가 더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아니 남의 나라야 어떻든 간에 우리나라와 같이 음악에 대한 올바른 교양이 선행되어야 할 사회에선 무엇보다도「프로」제작자들의 정신자세도 대중가요의 저질화에 상당한 관련을 갖는다.
특히 우리의 경우는 그 대중가요의 질이 문제가 되어야 할 줄 안다. 문제는 현실이다.
한국은 아직 민주주의 사회를 과제로 놓고「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는 시기에서 선진외국의 말기 현장을 본뜰 수는 없는 것이다.

<격조 높여 예술성 살려야>
그런데도 우리 연예「프로」에는 대중가요가 판을 치고 거기서도 퇴폐적인 가요가 범람하는 현실은 묵과할 일이 아니다.
그러면 소의 퇴폐가요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격조의 문제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가사의 내용, 그 곡조, 그리고 그것이 시청자에게 주는 감정반응의 저질여부를 가리키는 것이 되리라. 그 기준은 역시 가요라는「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기능이 아닐까 한다. 대중가요도 넓은 의미에서 하나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이 독자나 시청자에게 주는 것은「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의 작용을 곧 정화라고도 한다. 체내의 불순물을 씻어 내 순화하는 기능을 못하고 탈선한 부작용을 일으킬 때 그것은 비속한 작품이 되고「퇴폐가요」로 타락한다.

<무의미하고 불순한 가사>
우리 주변에서 유행하고 있는 대중가요에는 남녀간의「사랑」이 주제로 된 것이 태반이요, 그「애정가요」중 많은 것이 비속한 퇴폐성의 것이라는 것이 문제로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대중가요가 애정을 노래해서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사랑하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일이요, 특히 젊은 세대의 남녀의 특권이다. 그 사랑을 높이 구가하는 것이 왜 나쁘랴! 문제는 의미가 있는 애정이야기가 돼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질 못해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것이다.
내가 대중가요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여가에 집에서 혹은「버스」나「택시」안에서 흘러오는 음파로 들은 단편적인 인상을 주워 모아 볼 수는 있다. 가령 이미자양의『…아무 말도 않고 보내드리지』, 강정화 양의『님 소식 기다리다가 세월만 가네』정도만 해도 안심하고 들을 수가 있는데 그보다도 더 떨어지는 경우『가만 히 가만히 오세요…버드나무 밑으로』,『한번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또는『당신을 알고 부 터』같은 유는 대체 무엇을 노래하자는 것인지 그 의미가 없을뿐더러 시청자의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불순한 작용을 해독으로 남긴다.

<연예인 자숙·양식 아쉬워>
그런 노래와 그 인기가수를 둘러싸고 공개「홀」이란 데서 철없는 사춘기의 여직공들이 자지러진 환성을 올리고 있다면 그 가요가 특히 서민사회에 미치는 해독은 말할 수없이 큰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퇴폐가요 정화가 문제가 된 줄 안다. 더구나 근간의 일부 여자연예인들의「스캔들」이 사람들의 빈축을 사는 사건이 겹쳐서 더욱 대중가요계는 격하되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연예인사들의 자숙과「매스·미디어」의 양식이 요청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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