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푹신한 육질 감칠맛 나는 소스 자꾸만 손이 가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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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호 22면

1 사모님 돈가스. 두툼한 돼지고기 140g이 들었다. 밥과 쌈채 샐러드, 버터구이 감자가 나온다. 고소한 수프와 입맛 돋우는 깍두기도 함께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오래도록 사랑받아 온 서양 음식이라면 아마도 돈가스가 첫 번째 자리에 오를 것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좋아하는 국민 메뉴로 뿌리 내린 지 꽤 오래됐다. 이제는 서양식 식당뿐만이 아니라 일반 한식당, 기사식당, 분식집, 심지어 중국집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정도면 족보만 서양 음식이지 우리나라 음식이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33> 홍대옆 사모님 돈가스

돈가스는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원래 영어로 커틀릿(Cutlet)이라는 고기 요리에서 시작됐다. 이것이 19세기 말에 일본으로 전해지면서 일본식 외래어 표기로 카츠레츠(カツレツ)로 불리다가 돼지 돈(豚)자와 결합한 돈카츠(豚カツ)라는 새로운 이름이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돈가스로 불리게 되었다.

이름만 이렇게 바뀌어 온 것이 아니라 음식의 조리방법이나 형태도 소비자 취향에 맞춰서 바뀌어 왔다. 일본의 돈카츠는 서양의 커틀릿과 고기 두께나 튀기는 방법도 다르고 양배추 샐러드와 밥을 주는 것도 다르다. 우리나라의 돈가스는 일본 돈카츠보다 고기가 얇고 더 부드러우며 소스를 따로 주지 않고 끼얹어서 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소스의 맛도 다르다. 일본식은 소스가 시큼한 맛이 많고 강하지만 우리나라 소스는 훨씬 부드러우면서 상큼하다. 일본의 돈카츠는 일본 고유의 음식으로 발전한 것이고, 우리나라의 돈가스는 일본의 돈카츠로부터 시작했지만 다른 형태로 진화되어 한국화된 음식이라 하겠다.

최근 국내에서는 일본식 오리지널 돈카츠가 인기를 얻으면서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한국식 돈가스가 지나치게 대중화되면서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를 보는 저가형 음식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이에 실망한 소비자들이 등을 돌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식 돈가스가 일본식에 비해 특별한 개성이 분명히 있는데도 제대로 맛을 내는 곳이 많지 않으니 스스로 그런 대접을 자초한 것이다.

2 외부 모습. 3 내부 모습. 사진 주영욱

그런 중에도 다행스럽게 한국식 돈가스의 질을 높이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해오는 곳들이 있어서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들고 있다. 그중 한 곳이 홍대 근처에 있는 ‘사모님 돈가스’다. 이곳은 저가형 한국식 돈가스의 단점을 보완하고 정성스러운 노력을 통해 맛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호텔 요리사 출신인 이남길(44) 사장이 부인 한연호(44)씨와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이 사장은 대학교에서 정식으로 요리를 공부하고 호텔과 이탈리아 식당 등에서 요리사로 13년의 경력을 쌓은 실력 있는 분이다. 작지만 자신만의 식당을 열게 된 것이 2007년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요리들 중에서 가장 자신 있고 대중적인 요리를 찾다 보니 돈가스 전문 식당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돈가스는 다른 한국식 돈가스에 비해 고기가 훨씬 두툼하다. 마블이 있는 질 좋은 돼지고기 등심에 여러 가지 양념을 해서 12시간 정도 냉장고에서 숙성시켜 부드럽게 한 다음에 사용한다. 돈가스 소스는 자신만의 특별한 비법으로 직접 만든다. 미리 만들어 놓으면 맛이 떨어진다는 소신으로 번거롭지만 매일 하루에 두 번씩 새롭게 만들어서 사용한다.

이렇게 만든 돈가스는 우선 푸짐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의 맛이 훌륭하다. 얇게 편 고기에 튀김 옷만 두껍게 입혀놓은 수준 낮은 돈가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튀김 옷에 듬뿍 끼얹어진 상큼하고 고소한 특제 소스는 고기 맛을 더 감칠맛 있게 살려준다. 소스를 조금씩 찍어먹는 일본식에 비해 느끼한 맛이 훨씬 덜하고 계속 입맛을 끌어당긴다. 한국식 돈가스 특유의 장점이 잘 살아있는 것이다. 함께 내어주는 쌉쌀한 쌈채 샐러드는 고기와 튀김으로 텁텁해지는 입 속을 깔끔하게 보완해 준다.

‘사모님 돈가스’라는 옥호는 처음 식당을 시작할 때 7살짜리 딸 아이가 지어준 이름이다. 식당을 하게 되면 엄마가 손님들에게 ‘아줌마’ ‘이모’ 이렇게 불릴 텐데 그게 아니라 사장님 ‘사모님’으로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제안을 했단다. 본인들은 약간 어색하기는 했지만 아이의 마음이 고마워 그렇게 이름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TV 개그 프로그램 중에서 잘난 척하다가 “이 정도 생겼으면 이런 얘기 할 수 있잖아”라고 슬쩍 눙치는 개그맨이 있었다. 그 얘기를 빗대면 이곳은 “이 정도 맛있으면 사모님 대접 해드려도 되잖아요” 하고 내가 대신 얘기해 주고 싶은 곳이다. 엄마를 걱정하는 아이의 예쁜 마음을 살펴주고 싶기도 하고.

**사모님 돈가스 서울 마포구 상수동 92-2번지. 전화 02-337-2207. 점심 11:50~14:00 저녁 17:00~20:20 일요일은 휴일이다. 15석밖에 안 되는 작은 규모라 예약은 안 받는다. 사모님 돈가스 7500원.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 전문가이자 여행전문가.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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